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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누난나 Mar 17. 2024

가장 하찮은 모습을 보이다…1

결혼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번 글은 사건이 좀 많아서 (1)과 (2)로 나누어 작성할 예정입니다. 글을 읽으실 때 참고 해주세요 :)

힘들었던 기억이라 글을 쓰면서도 많이 힘들어서 업로드를 늦추다가 이제야 마음도 정리가 되어 글 올립니다.(24년 3월 17일)

사건당일 날찌 23년 9월 수시접수 기간


 지난 3개월, 약 100일간 직장에서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일단 청소년기에만 있을 법한 왕따라는 것을 직장에서 경험했고 입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데 어머님들이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무기력증, 우울증이 찾아왔고 아침 6시 30분이면 일어나 운동을 가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던 제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눈물 흘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티가 났던 것 같습니다. 치부를 들킨 기분이었고, 제 자신이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부모님이든 짝꿍에게든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의 가장 하찮은 모습을요…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혼자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하찮은 모습은 보여주기가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사람에게 말하고 그 사람을 의지하다 보면 제 온몸을 맡길 듯이 의지할 거 같은 저의 모습에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사람이 언젠가 떠나서 없어진다고 하면 그 사람을 너무 믿었던 제 자신이 그 사람의 부재로 또 힘들어질 것 같아 혼자 견디려고 했습니다. 또한 사람을 믿으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기에 그게 두려워 사람을 믿지 않고 힘들어도 혼자 견디자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중 고등학교를 살아와서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름 강하게 자라왔습니다. 사실 그때는 강한 척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척을 하며 살다 보니 점점 진짜 힘도 길러지긴 하더군요. 그래서 내면도 단단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저의 거리에도 나름의 기준들이 생겨났습니다.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더 옛날이야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의 일생에 대해 다른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상대방은 친하다고 생각해도 제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동생 말고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동생에게도 다 말하지 않고 저만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번 ‘직장 내 따돌림’ ‘왕따사건’의 발단은 학부모님의 항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입시 컨설턴트, 그리고 1:1 상담관리를 해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저는 약 20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수시 기간(9월)이 되기 전 6월, 7월, 8월 제가 담당한 고3 아이를 10번도 넘게 대학에 대한 내용으로 상담했고 9월 모의고사가 끝나고는 학교를 다 띄워놓고 리스트를 뽑았습니다. 어머님과는 7월과 8월 3차례 내방상담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수시 접수기간, 그 학생의 어머니께 컴플레인 전화가 왔습니다.

“왜 선생님이 되셔서 아무것도 해주시는 것이 없죠?”
“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이해가 잘 안 돼요^^”
“오늘부터 수시 접수기간인데 지금까지 뭐 하셨냐고요…”
“아이고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서운한대요? ㅎㅎ 제가 어머니 카톡으로 자료 다 보내드렸고 00 이와 상담한 내용 00 이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수시 뽑아놨는지 이야기할 거예요~그리고 8월 마지막 주 내방상담 때 자료 다 공유해 드렸어요~”
“아이 이야기 말고 리스트를 쭉 뽑아서 저한테 보내주셔야죠!!! “
“어머니 그래서 8월 31일에 상담 다녀가실 때 제가 자료 다 드렸잖아요. 기억 안 나실까요? 그때는 00 이와 상담하기도 전이었고 그 자료가 전부입니다.”“저는 받은 적 없어요. 기억 안 나요. 왜 일을 안 하시는 거예요? 지금 수시접수 기간인 건 알고 계세요? 대체 선생이 돼서 일은 왜 안 하시는 거예요?”
“제가 어떤 것을 안 했는지 말해주시겠어요?”
“부모한테 카톡으로 그냥 자료 띡띡 보내놓고 글 몇 자 적으면 다예요? 다른 부모들한테도 다 이래요? 오늘 상담 가도 돼요? 저 일 끝나고 바로 갈게요. ““어머니 제가 주말부터 엄청 아파서 오늘은 진짜 오셔도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응대가 힘들 거 같은데 내일 오시는 건 어떠세요?(실제로 주말에 지나친 과업으로 지쳐서 몸이 아픈 상태)”
“지금 고3은 인생이 달린 문제라 제일 우선인데 선생님 아픈 게 문제예요?”
“(내가 너무 어이없고 서러웠지만 눈물을 꾹 참고) 하…네 알겠어요 어머니 오늘 오세요.”
“뚜뚜뚜”


이렇게 통화가 종료가 되고 보스에게 그대로 일러바치신 어머니… 제가 일을 안 한다고 오늘 상담 가고 싶다고 했는데 아프다며 둘러댔다고 연락을 하셨다고 합니다.

 당연히 보스에게 불려 갔고 오늘 상태에 대해 그리고 카톡 상황과 일정표들을 보여 드리며 이렇게 어머님과 상담 진행하고 자료 보내드렸다고 전달했습니다. 보스는 알겠다고는 했지만 진짜 알겠는지는 모르겠는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어머님은 일을 마치시고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상담을 오셨습니다.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픈데도 8월 마지막날 뽑아 두었던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드리는데 어머님이 전혀 듣지 않으시고 제 앞에 팔짱을 끼고 뒤로 젖힌 채로 앉아 거만한 태도로 저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눈빛을 느낀 저는 상담을 중단하고

“어머님 제 얘기 듣고 계세요? “
“아니 선생님 지금 저랑 싸우자는 거예요? 지금 와서 이 자료를 주면 어쩌자는 거예요!!! 저는 애아빠랑 언제 이야기하고 언제 결정하고 언제 원서 접수해요!!!! “
“어머니 이거 8월에 드렸어요. 기억 안 나세요?”
“선생님, 지금 그렇게 하나하나 다 따지고 선생님이 저한테 뭐 줬는지 한번 다 들춰서 따져보자는 거예요?”
“아뇨 어머니, 따지는 게 아니라 제가 이미 해드릴 거 다 해드리고 드릴 것도 다 드렸는데 이렇게 화내시는 게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싸우자는 게 아니라요.”
“선생님 제 말에 그렇게 하나하나 다 말대꾸하실 거예요? 그냥 나랑 싸우자는 거네!!!(문을 확 열고 박차고 나감)”


또 보스에게 달려가셔서 하소연을 하시고 제 자료는 다시 전부 보스에게 드리고 보스께서 설명을 마치시고 그 어머님은 유유히 집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님이 집에 가시고 저는 보스에게 가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자기 자식이 먼저고 상대방은 생각도 안 하는 저런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다고 지금까지 해준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기분이라 더 이상 일할 힘이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너무나 귀한 직업이고 인적자원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한 집단이었기 때문에 보스는 저를 붙잡았습니다. 보스의 말에 붙잡힌 건 아니었지만 수능이 아직 안 끝난 아이들도 있었고 그만두겠다고 말한 시기가 너무 나만 생각했던 것 같아 다시 힘내서 일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수능까지만 버티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네요. 다 해드렸다고 생각해서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서 절대 안 나왔습니다. 저도 첫 사회생활이고 강강약약이기에 강하게 나오시는 어머님을 대응할 때 똑같이 강하게 나갔다고 생각합니다.(지금 생각하면 그냥 죄송하다고 할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근데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고 어이없어서 죄송하다고 안 말할 것 같아요.) 하여간 이 사건을 계기로 나머지 선생님들이 저랑 밥 먹으면 한마디도 안 하고 말도 안 걸고 말 걸어도 단답으로만 하고 여자들의 기싸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때부터 그냥 혼자의 삶을 즐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차피 각개전투이고 맡은 아이들에 더 집중하고 그냥 밥도 혼자 먹고! 머리는 이 상황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 상황에 매일매일 노출되고 있는 제 마음은 매일이 힘들었나 봅니다. 무기력이라는 친구가 찾아왔고 그에 이어 불면증도 찾아오고 잠을 잘 못 자니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있는 약 20명의 학생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 책상에 쓰러져서 잠깐 잠을 자며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었을 때는 어떻게든 밝은 모습, 긍정적인 모습으로 웃으며 버텼습니다. 아이들에게 최대한 영향이 가지 않게 노력했습니다. 금쪽이들이 많았지만 티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 먹는 시간에 오는 친구, 그리고 저의 삶에 관심이 많은 좀 성숙한 친구 이렇게 2명은 저의 상황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챘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일찍 오는 친구는 초등학생이기도 해서 괜찮다고 하며 절대 티 내지 않아 그 친구는 다행히 제 말을 믿고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저랑 평소에 삶에 대한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어떤지와 같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던 그 친구에게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참다 참다 11월 17일 수능이 끝난 다음 날 그 친구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떤 선생인지, 얼마나 무능력한 인간인지, 여기서 내가 이뤄낸 것은 무엇인지, 내가 무능력하다면 이 아이들은 무능력한 선생 밑에서 배우고 있는데 얼마나 부족하다고 느낄지.. 여러 생각들이 들면서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계속 흘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았고 오늘 많이 아파서 눈물이 난다고민 이야기 했습니다.)

 수능이 끝나기 3일 전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습니다………그 부분은 (2)에서 더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To be continue~

*첫 사진으로 첨부한 사진은 눈치 빠른 한 학생이 제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니까 그런 저를 보고 써준 편지입니다ㅠ 볼 때마다 눈물이 나네요. 뿌엥 ㅠㅠㅜㅠㅠㅜㅠㅠ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도(24년 1월) 글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으로 마음이 많이 힘드네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려고 용기를 낸 것 자체가 저도 이제 글을 씀으로써 털어내고 싶어 쓴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내 따돌림으로 힘들어하시는 분이 읽으신다면 제 글을 읽으며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해드릴 것은 없지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그리고 축복 속에 태어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걸작품입니다! 소중한 당신을 가장 먼저 보살피고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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