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를 신고합니다

엄마가 날 울렸어요

by 보리똥

"엄마! 거기서 뭐해?"

아이들 하원을 마친 후 집 근처 한적한 놀이터로 향한다. 미끄럼틀 하나만 달랑 있는 놀이터라 다른 꼬마 친구들이 찾지 않는 이곳. 미끄럼틀은 구불구불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정상에 다다른다. 아이들은 엄마가 어떻게 타는 거야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미끄럼틀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었다. 둘째 아이가 먼저 계단을 잽싸게 타고 올라가면 첫째도 뒤따라 간다.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슝! 들린다. 재밌다고 깔깔대는 녀석들.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틈을 타 놀이터 근처 토끼풀이 모여 있는 곳에 쭈그려 앉았다. 여기저기 토끼풀 밭 천지다. 어딘가 네 잎 토끼풀이 있을 거란 기대로 매직아이를 보듯 가만히 지켜본다. 물론 네 잎이 한눈에 띄진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 행운은 쉽게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항상 아픈 일만 있던 건 아니다. 아픔, 설렘, 행복이 적절히 균형 있게 찾아왔기 때문에 쉽게 찾아오는 행운은 살짝 의심을 해야 한다고 할까?


그래도 어쨌거나 네 잎 토끼풀은 찾아야겠다.

그 순간, "네 잎이다! 얘들아 엄마 네 잎 토끼풀 찾았어!"

엄마 함성을 들은 첫째는 미끄럼틀에 올라가다 말고 달려온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정말 네 개지? 이런 거 봤어?" 자 개념이 없는 아이에게 엄마도 주책이다. 똑같은 풀 같은데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 짓더니, "엄마! 이거!"

아이는 옆에 있는 세 잎 토끼풀을 작은 손으로 한 움큼 뽑아서 내게 건넨다. '에이 진짜! 이건 죄다 세 잎이잖아. 몰라도 너무 모르네 이 녀석'.


"세상에 이런 일이! 다섯 잎 토끼풀을 발견하다"

네 잎 토끼풀을 찾겠다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찰나, 분명 한 줄기에 있는 토끼풀인데 이파리가 빼곡히 붙어있는 토끼풀 발견! 뭔가 생김이 다른 풀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섯 잎이었다. 과연 다섯 잎을 찾는 게 가능한 일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네 잎 토끼풀을 채집하면서 다섯 잎은 듣지도 본 적도 없었다. 이건 우연이라 하기보다는 기적이다. 뭔가 강력한 행운이 올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


다섯 잎의 감동에 빠져있던 순간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있는지 방심했다. 미끄럼틀에서 잘 놀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라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있었는데 양말이 다 젖도록 물장난을 하고 있던 게다. 어이구! 녀석들! 조용하면 다 이유가 있는 법! 못 산다 못 살아!


"우리 그만하고 이제부터 걷기 놀이할까?"

"네에!"


"엄마는 가운데, 너희들은 왼쪽 오른쪽에 서 있는 거야. 엄마 손잡아 봐"


작고 통통한 너희들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아빠 손을 잡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이 느낌. 아이들도 엄마도 두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꼭 맞잡은 두 손. 아이들 손을 잡고 한 발, 두 발 보폭에 맞춰 걸을 때면 늘 보던 것도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새 들의 작은 속삭임이 들리거나 풀벌레가 위잉~소리를 내며 우리 앞을 지나간다.

"엄마, 새, 새야." 작은 새가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일 때마다 신기한가 보다.

"엄마, 뱀, 뱀." 작은 벌레는 아이들에게 뱀이다. 길쭉하고 징그럽게 생긴 진짜 뱀을 못 봐서일까? 모든 낯선 곤충을 뱀이라 이야기한다.


아이들과 걷는 도중 토끼풀 무더기가 보인다. 내 시선은 온통 토끼풀에게 집중된 채.

이 정도면 토끼풀 찾기 집착증이라 해야 할까? 왜 토끼풀만 보면 네 잎을 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는 지원.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데 아이들이 손을 놓아주질 않는다. 하는 수없이 '그래 포기하자!' 때론 하고 싶어도 포기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토끼풀이야 다른 날 찾으면 되지.



"우리, 노래할까? 곰 세 마리?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기곰이 귀엽다며 옆구리를 찌르면 간지럽다고 깔깔깔 웃는다. "엄마, 할아버지 곰 해봐!" 곰 세 마리를 부르면 아이들 주문이 시작된다. 이윽고 할아버지 곰 노래가 끝나면 할머니, 아빠, 엄마, 아기를 부르라고 한다. 나는 아이들 주문이 끝날 때까지 녹음된 테이프처럼 곰 노래를 부른다. 곰 세 마리는 참 귀여운 노랜데 엄마에게는 쉽지 않은 노래다.



한 시간 정도를 아이들과 걷고 이야기를 한 후 집에 가기 위해 왜건에 태운다. 이제 배고플 시간이니 저녁밥도 먹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했다. 이렇게 산책을 한 후 집에 가자고 하면 아이들도 떼쓰지 않고 순순히 따라와 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군데군데 토끼풀이 무리 져있다. 시간도 늦어 집에 가야 하는데 자꾸 토끼풀이 발목을 잡는다.


"저기, 엄마 네 잎 한 개만 더 찾으면 안 될까?"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춘 채 네 잎을 찾고 싶어 여기저기 시선을 집중해 본다. 두 개도 아니고 한 개인데 뭘.

마음이 급해서인지 아무리 찾아도 네 잎이 보이질 않는다. 조금만 더 시선을 집중해 보자. 하지만 5분도 안 돼 둘째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발과 손을 움직이는 게 나 짜증 났다로 보였다. "으앙! 엄마! 아니야! 아앙~"

예상했던 대로 둘째는 인내심에 한계를 표현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엄마! 엄마... 아! 아!" 발을 동동 굴리다 못해 앉아있던 왜건에서 탈출한다고 난리 법석이다.

그래, 오늘 네 잎 토끼풀은 여기서 그만 찾아야겠다. 그래도 다섯 잎을 찾았으니까...



과연 네 잎 토끼풀을 찾으면 행운은 저절로 찾아올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보니 결론은 아니다에 한 표다. 아무런 노력 없이 행운이 찾아온다는 건 말짱 헛소리다.


반대로 토끼풀의 믿음을 갖고 노력한다면?

어쩌면 행복이 올 거란 믿음과 노력이 함께 한다면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는 일. 아마 네 잎 토끼풀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