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엄마와 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똥 Oct 24. 2021

엄마가 사라졌다

늘 그리운 우리엄마


엄마가 사라졌다.


가을빛 찬란한, 꽃들이 춤추는 이곳에서 카메라에 담고 있는 모습은 오직 아이들뿐이다. 분명 엄마는 아이들 곁에서 함께 서성이고 있는데, 나는 엄마를 사진 속에 사라지게 했다. 꼿꼿했던 엄마 허리는 어느 날부터 조금씩 휘기 시작하더니 눈에 띌 정도로 휘어버렸다. 엄마를 사진 속에 그대로 담아버리면 모습이 더욱 두드러져 보일까 봐, 당신의 모습을 보면 실망할까 봐 차마 엄마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야외에 나온 아이들은 기분이 좋은지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엄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빈집처럼 썰렁한 집이 아이들로 인해 시끌벅적 어수선한 것조차 기다려진다고 했다. 그럴만한 것이 아빠는 매일 어딘가 아프다고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나도 몸뚱이 어디 하나 안 아픈 곳이 없는데, 네 아빠는 자기만 아프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픈 곳을 이야기할 수가 없어. 젊어서나 지금이나 변한 거 없이 지 몸뚱이만 알아. 어이구!" 엄마는 한숨을 쉬며 신세한탄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찾아오는 주말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다른 손자, 손녀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뒤늦게 본 손자들이 그토록 예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할미? 할미? 업어." 방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던 포대기를 들고 오는 손자. 포대기는 할머니 전유물이다. 그걸 잘 아는 아이는 할머니만 보면 업어 달라고 야단이다. 할머니의 굽은 허리조차 포근하고 따뜻한 아이다.


엄마는 주말이 찾아올 때마다 손자를 기다린다.   평소 연락 없이 지내다가 주말만 되면 내게 전화를 한다. 엄마는 집에 올 거냐고 묻지 않았다. 아이들은 잘 있는지, 밥은 챙겨 먹었는지, 싸우지 않고  노는지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다. 나는 엄마가 무슨 이유로 전화를 했는지 알고 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오늘 집에 간다고 하면 잠도 주무시지 않고 자식들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테니까. 늦은 시간까지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위해 작은방에 이불과 요를 깔아놓고 기다릴 엄마다.


꽃 피는 봄이 되면 어미 제비는 새끼를 낳기 위해 둥지를 만든다. 보통 둥지는 논농사가 시작될 무렵에 짓는데, 제비는 질척한 흙과 짚을 수 차례 물고 와서는  정성스럽게 한 겹 한 겹 쌓는다. 둥글고 아늑한 둥지가 완성되기까지 제비는 입이 달도록 흙을 물고 온다.


드디어 제비가 둥지에 알을 낳았다.  자신은 굶어가며 배와 엉덩이에 군살이 박힐 정도로 따뜻하게 알을 품었다. 마침내 새끼가 알을 깨고 세상에 태어났다. 나는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끼들 소리에 낮잠을 자는 것도 어려웠다. 그중  노란 입을 가장 크게 벌리고 목소리가 큰 새끼 제비는 엄마가 물어다 주는 벌레를 가장 많이 받아먹는다. 그렇게 새끼는 어미로 인해 성장했고, 어느 날 새끼 제비는 엄마가 물어다 주는 벌레가 필요치 않은 듯 둥지 안에서 더 큰 세상으로 힘찬 날갯짓을 하며 사라졌다. 한 마리, 두 마리, 네 마리... 둥지 안에서 시끄럽게 짹짹대던 새끼는 그렇게 모두 더 큰 세상으로 떠났다. 새끼가 떠난 빈 둥지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허전한 눈빛으로 하염없이 빙빙 돌던 어미는 그제야 제 할 일을 끝낸 듯 멀리 날아갔다. 그러고는 이내 사라졌다.


아빠는 이번 주말 자식들이 집에 찾아올까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마트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구르트와 치즈, 함께 구워 먹을 고기를 사다 놓았다. "엄마, 이번 주는 할 일이 있어서 못 갈 거 같아."


"엄마! 고기가 왜 이렇게 상했어? 변색돼서 먹지도 못하겠는데? 개밥이나 줘야겠다."

"아깝게 그걸 왜 버려. 사놓은 지 일주일밖에 안됐다."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본인이 먹는 건 아깝다고, 부패되는 고기를 먹지 않고 한 주를 기다렸다. 이미 둥지 안에서 어미가 물어다 주는 벌레를 먹고살던 새끼는 세상 밖으로 떠난 지 오랜데,  엄마는 하염없이 새끼를 기다리는 어미 제비 같았다. 어미가 물고 있던 벌레는 돌아오지 않는 새끼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이미 말라비틀어졌는데도 말이다. 


다행인 것은, 이듬해 봄이면 어김없이 또 다른 제비가 빈 둥지를 찾아온다. 분명 둥지를 다시 찾은 제비는 어미 제비가 아닌 새끼 제비일 것이다. 떠나고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새끼는 엄마의 품을 기억하고 자신의 새끼를 낳기 위해 집을 찾았다.


"엄마, 이번 주에는 아이들과 꽃구경 가요.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해맑게 미소를 띨 엄마가 마음속에 그려진다.


그렇게 엄마는 새끼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미 제비고, 나는 주말마다 엄마를 찾는 새끼 제비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향리에 시집 왔시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