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쟁이처럼 예쁘게 안 생겨서 다행이여"
진짜 나만의 옷가게에서 만난 사람들
첫 가게를 오픈했다.
어제저녁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작지만 옹기종기 귀여운 조명이 달린 샹들리에를 천장에 매달았다. 전원을 켜자 따뜻해 보이는 전구색은 가게 전체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예쁜 조명에 이끌렸을까. 두 아이를 양손에 잡고 시장으로 가던, 나와 나이가 비슷한 아기 엄마가 가게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 바뀌었다더니 분위기가 달려졌네요? 구경해도 돼요?"
그녀는 가게를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이 가게 취향이 좀 나이대가 있잖아요? 저는 전 주인한테 제가 원하는 옷을 주문해서 입었어요.
제가 필요한 건 무늬가 없는 루즈한 티셔츠예요. 그렇다고 너무 밋밋한 건 싫고요."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틈을 타서 그녀 아이들은 가게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옷 텍 바구니를 모두 엎질러 바닥이 온통 텍 천지였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텍을 허공에 뿌리며 좋다고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이 녀석들! 조용하면 사고 치는 거야. 어떡해요. 죄송해서. 제가 이래서 어디 가서 오래 있질 못해요.
그래도 저 이 가게 단골이었어요. 자주 놀러 오고 옷도 많이 샀는데, 사실 전 주인은 좀 깍쟁이잖아요?
근데 전 주인과 분위기가 완전 반대인 거 같아요. 맞죠? 생긴 것부터 너무 착하게 생기셨네."
"... "
내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가게 전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떠났다. 그녀와 아이들이 떠나간 자리는 모든 게 제자리인 것이 없었다. 짝이 다른 신발, 한 방향으로 정리된 옷걸이들은 여기저기 산만하게 뒤섞여 있었다. 나는 곧바로 신발 짝을 맞추고, 흐트러진 옷걸이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이제 처음처럼 깔끔한 가게가 되었다.
옷가게는 시장 안쪽에 있었는데, 건물 주인아주머니는 옆에서 미용실을 운영했다. 옷가게 바로 옆은 20년 이상 된 양품점, 30년은 더 됐을 것 같은 철물점이 있었고, 철물점 옆에는 금은방이었다. 금은방 앞으로는 화장품 가게가 있었다. 옷가게는 여러 상인들이 운영하는 가게 사이에 있었고, 그들의 관심은 새로운 옷가게가 오픈했고,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전 주인은 여우같이 예쁘게 생겼는데. 바뀐 주인은 편하게 생겨서 자주 갈 것 같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얼핏 기분 좋은 말인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외모를 비교하는 것 같아서 살짝 기분이 꿀꿀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 주인이 예뻤던 건 인정한다. 그래도 장사할 때는 편안한 게 최고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옆 가게 양품점 사장님은 나보다 나이가 지긋한 옷을 판매하지만, 같은 옷가게를 오픈해서 샘났는지 단 한 번도 가게에 찾아온 적 없었다.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치면 인사만 할 정도였다.
양품점에는 빈 공간이 없을 만큼 옷들로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건 계절 상관없이 디피 되어있는 옷 때문이었다. 많은 옷 속에서 봄 옷을 찾는 게 어려울 것 같지만, 양품점 사장님은 현재 필요한 옷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허름한 옷을 입고 가게를 찾아왔던 할머니는 가게를 나오자 꽃무늬가 가득한 화려한 카디건 세트를 입고 있었다. 양품점 사장님의 노련한 장사 수단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건물 주인아주머니는 미용실을 운영했고, 키가 작고 통통한 체격이었지만, 목소리는 오랫동안 장사한 사람답게 하이톤으로 밝은 인상이었다. 까만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지만 한눈에 봐도 젊은 시절 꽤 미모가 출중했을 것 같았다. 늘 검정 옷만 입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나오는 뱃살을 가리기 위해 어두운 시폰 블라우스를 자주 입는다고 했다.
"가게를 둘러보니까 내 스타일은 없네. 나중에 시장 가면 이런 스타일로 한 벌 부탁해.
가게 오픈했는데, 사주지 못해 미안허네."
가게 안에는 새로 사입해온 옷들로 가득 차 있는데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옷만 주문만 할 뿐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잠재고객이 될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얼굴도장도 찍었으니 다음 가게 방문때는 매출로 이어지겠지.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는 긍정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던 자신이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하지 못할 일에 에너지를 쏟았다. 오늘은 단 십만 원도 벌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샹들리에 불빛 가득한 나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비 내리던 아침,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헤이즐럿 원두커피를 내렸다. 원두를 내리는 동안 가게 안은 커피 향으로 가득 찼다. 오래된 가게문을 열자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오픈을 알리는 간판으로 뒤집어 놓았다.
'과연 오늘은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 어제 정신없던 아이 엄마 말고, 가볍지 않으며 진지한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평소 우리가 옷가게에서 만나는 사람은 한번 스치고 끝나는 인연 같지만, 이곳은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다시 만날 날을 약속했고, 차 한잔을 하며 이야기할 날을 기다렸다.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헤이즐럿 향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 지나가려는데, 커피 향이 나잖여, 원제 오픈 한 거유?"
순간 보글보글 머리, 화장끼 하나 없는 60대 손님이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