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가게 전주인이 죽었습니다

오늘은 그녀 이야기를 하려 해요

by 보리똥

그녀는 참 예뻤다.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에 굵은 웨이브, 깨끗한 피부, 동그란 눈, 앵두 같은 입술로 미소를 보였다. 순간 길을 지나는 남자들은 지나가다 말고 그녀에게 시선이 멈췄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남자들이 그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남자들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그래, 그녀는 정말 예쁜 게 맞다. 그녀에 비해 나는 쭈그렁 망태기 같은 얼굴이었다. 십 대부터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여드름과 아직도 사투 중이고, 프라이팬에 빈대떡을 발라놓은 것 같은 얼굴은 누가 봐도 비호감이었다. 가게를 알아볼 때 나는 가게보다 먼저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마른 몸매에 비해 통통한 젖가슴을 보이는 옷은 그녀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헹거에 걸려있는 옷들보다 더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던 그녀는 내 옷가게 전주인이다.


그녀 꿈은 비행기 승무원이었다. 옷가게를 그만두는 이유도 장사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승무원 공부를 하기 위해 그만둔다고 했다. 가게는 꽤 잘 됐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동대문에 갔다며 장끼(동대문 구매 영수증)를 보여줬다. 또한 수기로 작성한 매출장부를 보여주며 매출은 이 정도는 찍었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단골에게 신상이 입고될 때마다 지속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라 했다. 시골이라 옷가게가 얼마 없어서 옷에 관심 있는 아줌마들은 자주 올 거라 말했다. 옷가게에서 옷도 못 팔고 그냥 놀다만 가지 않게 판매전략까지 설명해줬다. 다양한 표정으로 설명하는 그녀에게 그만 퐁당 빠져버렸다. 때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하다가 진상고객을 만날 때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 오르지만 동네장사라 어쩌겠냐며 참을 줄 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동네는 소문이 무척 빨라서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했고, 최대한 손님 비유를 맞추며 장사하는 게 최선이라 했다.


나는 그녀 이야기를 들으며 솜사탕에 빠진 개미 같았다. 그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무척 달콤해서 솜사탕 안에서 허우적대는 개미 꼴 같다고 해야 할까. 입안에는 솜사탕을 잔뜩 머금고 있으니 그녀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옷가게에 대해 설명하는 그녀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귀에 잘 들리질 않았다. 분명 나는 여자인데 그녀에게 반한 자신을 보니 마치 숫개미가 된 것 같았다. 이거 참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게를 알아보러 오자마자 계약하겠다고 말해버린 나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괜찮아요. 옷가게를 처음 한다 해도 제가 알려주는 거래처만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어요. 호호호. 걱정 말아요."


마지막으로 만난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가게를 찾았다. 화려하게 생긴 그녀에 비해 남자 친구는 예상했던 것보다 수수한 얼굴이었다. 중간키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권리금은 언제 입금할 거냐며 가게를 얼른 정리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서두르는 남자 친구 속마음을 눈치채고 신경 쓰지 말라며 장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든 가게를 생각보다 일찍 넘기게 되어 아쉽다고 했다. 더 하고 싶었지만 꿈을 위해 포기하는 게 잘 한 결정이라 말했다.


그녀는 작은 옷가게 사장보다 승무원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톡 튀어나온 이마와 두상이 예뻐서 앞머리 없이 묶은 똥머리가 예뻤을 것이고, 키가 커서 스커트에 단화만 신어도 예쁜 몸매는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예쁜 얼굴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어딜 가든 남자들은 그녀에게 시선집중이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할 것이다. 나는 살면서 이성에게 시선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리 차려입고 나간다한들 준비하는 나만 힘들지 매일 거기서 거기였다.


한 번은 8센티 굽이 있는 하이힐을 신고 외출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는데 누군가 계속 같은 방향으로 쫓아오는 발소리가 느껴졌다. 신호를 기다릴 때도 여전히 그는 뒤에 있었고, 집으로 향해 걷거나 골목을 돌 때도 여전히 같은 소리가 들렸다. 조금 외진 골목에 이르러서 궁금한 마음에 가던 길을 멈추고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키가 크고 소년 같은 얼굴을 한 남성이었다. 드디어 그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어? 따라와서 죄송합니다." 하고 등을 훽 돌린 채 다른 방향으로 길을 가는 게 아닌가. 당시에 나는 뭐가 죄송하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내 뒷모습에 반해서 나를 따라왔지만 내 얼굴을 보고 상상했던 모습과 달라서 도망친 거다. 분명 나를 따라올 때는 그의 발소리가 '탁탁탁'하고 들렸는데 어느 순간 '다다닥'으로 들렸다면 도망친 게 맞는 걸 테다. '살면서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지'라고 자신을 위로했지만 예쁜 그녀를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게 맞다.


그녀가 떠나고 가게를 운영한 지 반 년정도 될 때쯤이었다.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동네 단골 화장품 언니가 가게에 들렀다. 언니는 그녀가 있을 때 옷을 자주 구매해서 입었다고 했는데 내가 바뀐 후부터 같은 거래처라도 옷이 달라 보인다는 이유로 자주 오지 않는 편이었다. 너무 노땅같이 큰 옷이 많아서 자신과 스타일이 다르다고 했다. 언니는 가게를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내게 말했다. "있잖아. 여기 옷 가게 전주인 말이야. 결혼을 앞두고 며칠 전에 사고로 죽었데. 의료사고인데 의사가 인정하지 않아서 장례도 못 치르고 부검까지 갈 계획인가 봐. 너무 예쁜 나이에 죽게 돼서 안타까워. 더 예뻐지려고 했다가 사고가 났다지 뭐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녀가 죽었다고 한다. 그녀가 줬던 키티 계산기가 눈에 들어왔다. 죽음이란 게 이렇게 허무한 것인가.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필요 없고 오롯이 살고 싶은 욕망만 있을 뿐이다.


그녀 소식을 듣게 된 나는 저녁 무렵이 될 때마다 자주 그녀 모습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구석진 소파에 앉아 있을 때마다 어딘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필 불 끄는 스위치가 맨 안쪽에 있어서 컴컴한 채로 현관을 향해 걸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유독 겁이 많던 나는 그녀를 생각하면 할수록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 키티 계산기, 그녀가 사용했던 모습 집기가 그대로인데 그녀가 세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가게는 그럭저럭 현상유지만 될 뿐이었다. 그녀 말처럼 놀러 오는 단골은 많지만 옷 구매로 이어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옷보다 대화가 고픈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어쩌면 옷을 판매하는 일보다 아픔을 어루만지는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보다 못난 얼굴이고 옷 장사도 못하는 자신이었지만, 옷 가게를 하면서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보다 남에게 득이 되는 일을 잘한다는 것. 역시 장사 체질이 아니었다. 딱 1년만 채우고 가게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장사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록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승무원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하늘 어딘가에서는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예쁜 승무원이 되었을 것이다. 꽃 다운 나이에 못 다 핀 그녀 꿈이 그곳에서는 훨훨 피어나길 바란다. 오늘따라 미소띈 예쁜 그녀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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