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구하다가 멘탈 박살( feat.자존감테스트)
“그 돈으로 서울에서 집 구한다고? 와, 그거 성공하면 나도 좀 알려줘요.”
2016년 1월, 청소년 상담 자격증 9박 10일 연수를 위해 서울에 왔다. 유학 준비로 첫 직장을 퇴사했다. 나에게는 연수라기보다 서울 여행이랄까, 겸사겸사 바람도 쐴 겸 말이다. 내가 살던 도시보다 한참 북쪽이었던 서울의 겨울은 참 추웠다.
교육을 받는 혜화역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며 하루 8시간 교육을 받고, 외식을 하고 시내를 구경하니 기분전환도 되고 하루 종일 공부를 해도 나쁘지 않았다. 나도 살면서 한 번은 서울살이를 해보고 싶었는데. 대학과 첫 직장을 지방에서 다녀서 기회가 없었다. 재수라도 할 걸, 괜히 후회됐다.
교육을 듣는 3~4일 차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유학 정보는 서울에 훨씬 많은데, 유학 준비하려면 서울에 살면 좋지 않을까? 직장도 때려치웠는데 굳이 다시 내려갈 이유가 있을까? 서울에서 살면서 유학 준비를 하면 더 빨리 유학 갈 수 있지 않을까?’ 연수를 핑계로 상경한 나는 이대로 서울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엄청 설렜다. 지금 당장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숙식만 해결되면 되는 문제였다. 서울이 외국도 아니고 말이다. 당장 먹고살고 갈아입을 옷은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 필요한 물품들은 차차 마련하면 되고 말이다. 집만 구하면 됐다. 짐은 직접 가져오거나 가족에게 부탁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당장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룸 시세가 얼마인 줄도 모르면서, 어느 동네에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당장 집을 구하기 위해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만약 연수 기간 동안 집을 구하지 못하면, 지금 머물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에게 부탁드려서 한 달 살기라고 하면 되는 일이고 말이다.
인터넷을 뒤지는데, 원룸 정보는 너무 없고 계약서나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까지, 어질어질했다. 집 구하는 거 정말 어렵구나 싶었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용기를 내서 부동산 몇 군데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 돈으로 원룸을요? 요즘엔 반지하도 어렵죠”
“그 정도면 차라리 고시원 알아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고시원 안 가보셨어요?”
“그 정도 돈인데, 반지하에 살고 싶지 않다니, 무리하시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냉담하고 무심한 말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 앞길이 통째로 막힌 기분이었다. 난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
월 200만 원 못 버는 직장인은 집도 구하면 안 되는 걸까?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부모를 대동해서 집을 구해야 하나? 그러면 부모 없으면, 서울에 발도 못 붙이는 걸까? 혼자 집 구하면 가로등도 없는 골목에 있는 집에 살아야 해? 그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내 자존감을 쪼그라들게 했다. 좌절스러우면서 동시에 화가 났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서울살이의 첫 관문은 ‘돈’이 아니라, ‘존버하는 용기’라는 걸.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녹록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검색을 이어갔다. “직장인 기숙사”, “직장인 자취”, “학생 자취” 등 다양한 키워드로 찾던 중, “셰어하우스”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응? 셰어하우스??’
해외에서는 대학생들이 하나의 아파트를 공유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 속 그 아파트처럼. 한국에도 이런 집이 있을까?
본능적으로 “이거다!” 싶었다. 곧바로 인터넷을 뒤졌다. 그 당시 운영되는 셰어하우스는 극소수였고, 부동산 매물도 아니었다. 대신 포털사이트와 개인 사이트 등에 업로드된 글이 전부였다.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직접 연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상상해 보니, 혼자 덩그러니 사는 것보다 다른 방에 룸메가 있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게다가 셰어하우스라면 고시원이나 반지하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보증금이 저렴했다. 저렴하면서도 안전하고, 좁은 방 대신 거실과 방이 분리된 공간에 살 수 있다니! 이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처음 알아본 곳은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였고, 이화여대 근처였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타깃이겠군’ 싶었다. 안전상의 문제로 정확한 위치는 노출되어 있지 않지만, 대략적인 동네를 보니 2호선 이대역과 아현역 사이쯤. 이화여대 학교 근처라서 안전하지 않을까?
여대생들과 함께 살다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나는 학생은 아니지만, 대학가의 활기찬 분위기와 에너지가 좋았다. 상큼하고 씩씩한 이대생들과 함께하는 생활,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대학가에는 저렴한 먹거리와 카페도 많고, 유동인구도 많다. 사람이 많으니 장을 볼 곳도 쉽게 찾을 수 있을 테지.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졌다.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2016년 당시 셰어하우스가 한국에 막 도입되던 시기라 정보가 많지 않았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셰어하우스 측에 연락했다. 자기소개를 하고, 어떤 사정으로 집을 구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곧장 답장이 왔다. 아직 공실이 있다는 반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집을 보기 전, 간단한 면담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바로 면담 시간을 확정했다. 부동산과 끊임없이 연락하며 눈치 보던 시간에 비하면, 이 과정은 얼마나 수월한지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나는 서울에서 셰어하우스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2025년 현재까지, 유학기간을 제외하면 나는 서울에서 줄곧 셰어하우스에 거주 중이다. 이 정도면 ‘프로 셰어하우스러’라 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