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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Oct 18. 2022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지 알 수 있는 확실한 목록들

스피노자 『에티카』와 이성복 시『그 여름의 끝』으로 살펴보는 사랑의 증거




1) 사랑은 부재의 고통을 전제로 존재한다.





이성복의 시에서 말하는 부재의 고통. 그래서 '결혼은 사랑을 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같이 있으면 해야하는 절차들과 한 여성과 한 남성을 옮아매서 부재의 고통을 사라지게 만드는 혼인 계약서 같은 것들 말이다.


누군가는 '사랑'이 금지된 욕망처럼 지킨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상대도 그러한데 얼굴에 큰 산을 그리고 경직되는 것이다. 절대 사랑한다고 용기를 못내는 사람들이있다. 그러다가 상대가 떠나고 나면 언제그랬냐는듯 다시 본래의 가면으로 쓰는 사람. 나는 누군가에게 실연을 당한 적이 없다는 듯. 자신은 완벽해야 하고 완전해야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특화술로 쓰이는 것 이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신을 과대망상에 씌이게 '솔직하지 못한' 그 상태. 

하지만 그 사랑의 흔적은 스스로를 공허하게 만들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지나고 난 뒤에야 알게 된다. 상대를 잃게 되는 건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사랑을 따 먹고 싶으면서 보기만하고 마는 여우?

사랑을 따 먹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는 여우?



*


결론이 어떻다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사랑의 결말이 안좋더라도 그렇게 마음도 그만큼 가볍게 접는다.




만일 내가 타자에 의해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사랑받는 자로서 자유로이 선택되어져야만 한다. 알다시피 사랑과 관련된 통상적인 용법에 따르면 ‘사랑받는 자’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 선택은 상대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 사실 사랑에 빠진 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우리의 욕망은 오직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인간적일 수 있다. 우리가 타자의 육체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때에만, (…) 다시 말해 만일 우리가 타자가 인간 개체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욕망하거나’, ‘사랑하거나’, 혹은 ‘인정하기’를 원할 때에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적 대상에 대한 우리의 욕망도 단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만 인간적일 수 있다. 우리의 욕망이 동일한 대상에 대한 타자의 욕망에 의해 매개된다면 말이다. 타자가 욕망하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이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헤겔독해입문(Introduction à la lecture de Hegel(1947)







2) 죽을 것처럼 최선을 다해라. 그래야 미련없이 떠날 수 있다.



지나고 나면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별시, 뒷말않고 절대  돌아 오지 않는다.'

뒤늦게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절박히 노력한자는 떠날때는 가볍다. 그리고 사랑을 받은 사람은 알게 된다.


우리 스스로가 '정말 좋은 사람 한 명'을 놓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은 '자유의 구속을 심하게 받는 사람'에게 멀어진다. 사람은 '자유롭기 때문에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자유로워보이는 사람일 수록 사랑에 빠지기 매력적인 사람임을 알 것이다. 

어떻게든 붙잡아두려고 하는 사람 혹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연인의 곁에 머물러 있어함은 오히려 사랑을 멀게 한다.


사랑은 참 아이러니해서. 독점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느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기쁨으로 자극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사랑으로 자극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만일 그가 우리들이 사랑하는 것을 슬픔으로 자극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반대로 그 사람에게 증오로 자극될 것이다.
-에티카(Ethica)ⅢP22


사랑에 빠지는 현상과 관련하여 우리는 늘 성적 과대평가 현상, 즉 사랑의 대상은 어느 정도 비판을 면제받는 권리를 누리며, 그 대상이 지니고 있는 모든 특징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람보다, 또는 그 대상이 아직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때보나 높이 평가된다는 사실에 부딪힌다.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Massenpyschologie und Ich-Analyse)(1921)








3) 상대방과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다면 한쪽은 붕괴될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절실하면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서라도 상대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가지지 않고 있던 취향이나 상대의 욕망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새로운 정보와 사실의 감각들을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비극이 아니라 '진정한 희망'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따르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 의해 사랑에 빠질 가능성에 노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게 된다. 

라캉의 정의이다. '사랑은 우리가 가지지 않을 것들을 주게 된다.'

사랑의 기적이다. 가난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도둑질도 하게되고 옛날에는 나라도 말아먹는다.

원래 사랑은 그 정도 강도이다. 주고서 아까워 할까? 합리적인 연애 생활? 


진짜 좋아하면 주변을 따지지 않게 주게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가지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하나 하나 준다는 것만큼 사랑은 진심이다.

참 의아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꼭 뭔갈 또 돌아서 받게 되고 그러니 마음이 풍성해 지는 것이다.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랑을 다 주고서도 그리 해맑고 더 행복해하는 그 아름다움을 말이다.






4) 사랑은 상대가 가지고 싶은 것을 자신도 가지고 싶어 한다.



아이들의 장난감놀이를 보면, '좋아하는 아이의 장난감'을 뺏거나- 자신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한다. 그러면 상대 아이는 '자랑하는 아이옆에 붙어서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결국은, 싸우고 울게 된다.

이러한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상대가 원하고 소유하는 어떤 물건들을 자신도 '가지고 싶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신도 좋아하게 되고 갖고 싶게 되는 것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 자신이 가진 장난감을 주기는 싫고, 장난감 가지고 있으면 자신옆에 있을 것이고.

근데 막상 좋아하는 이 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에만 몰입해 있으니- 심술이 궂어, 아이는 싸우고 울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도 그렇게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어른들만 이렇게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나의 기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로 부터 외면을 받을 시 정말 '윤동주의 시'처럼 사랑한채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선언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상적인 망상, 과대 망상과 같은 것들에 휩싸이며 그 집착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과대망상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의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과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 망상증세는 벗겨질 것이고, 사랑은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이어갈것인가?
아니면 '정든 유곽'처럼 지키고 갈 것인가. 당신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선택도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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