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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Oct 19. 2022

매스컴으로 잘못 해석된 사랑의 진짜 해석은 무엇일까?

유안진의「말하지 않은 말」과 질 들뢰즈의 『프루스트의 기호들』을 통해




사랑의 언어- 기호, 고백, 말




말하고 나면 속이 텅 비어 버릴까봐

나 혼자만의 특수성이 보편이 될까봐서

숭고하고 영원할 것이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해버릴까봐서

거리마다 술집마다 아우성치는 삼사류로

오염될까봐서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 거다

참고 참아서 씨앗으로 영글어

저 돌의 심장, 부도 속에 고이 모셔져서

뜨거운 말씀의 사리가 되라고


-유안진, 「말하지 않은 말」













대중가요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남발하거나, 주변 친구들에게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남발하다 보면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사랑'에 대한 말을 전염받아 그것에 대한 소통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사랑이란 것들에 대화를 너무 자주 하다보면 입에 배인 그 '사랑'이라는 단어가 마치 변질되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들은 마음속에 묵혀두기반 하다가 오히려 썩혀 버리는 꼴이 된다. 마치 어떤 술에 어떤 것들을 잘못 넣어 묵히면 썩어버리듯이, 묵혀두다 보면 썩어버리는 것이 '사랑의 감정'이라 본다.






책 추천 ::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동문선 X 문학과 지성사 O)




동문선 출판사보다 문학과 지성사의 번역이 낫다고 한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나 미셸 푸코나 니체 등등 글을 읽는 것은 '한 문장을 잡아내기'이며, 그 사람이 어떻게 책을 읽을지 '저자의 음율을 파악'해야만 한다. 우리가 철학책을 읽을 때 완전한 문맥을 잡아내지 못함은 결국 '저자의 음율과 책 한권 속의 핵심 문장'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글을 시작하겠다.





01) 억압된 욕망의 사랑을 표현해야만 한다. 그건 상대방이 아닌, 당신의 문제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철학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모르면서 그것을 계속 걸어가며 연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은 과일이 익어가는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설익으면 먹지도 못하고, 잘못하면 다 익어 떨어져 버리는 감같다. 그렇기에 사랑은 힘든 것이다. 그 타이밍을 놓치는 사람이 많다.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사랑에 실패'를 자주 한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타이밍은 언제가 좋은가?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시간이 흐른뒤, 절벽에 스스로가 몰리지 않도록 천천히 나아간다. 이렇게 말하면 답답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 시대에 빨리 사귀고 아니면 헤어지는 연인들이 '사랑'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꼭 눈에 보이지 않는 '니체'나 '스피노자'같은 죽은 위인들을 사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죽은 시인을 사랑해본적이 있는가?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그의 입술에서 ‘난 널 사랑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사람)은 수많은 불확실하고도 의심쩍은 인색한 사랑의 기호들을, 또한 그 징조나 증거들(몸짓, 시선, 한숨, 암시, 생략 등)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자신을 해석하게끔 내버려두어야 하며,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언어의 그 노예 같은 세계에 양도된 채, 사랑의 기호의 그 반발적인 구현에 지배를 받는다. (노예란 바로 혀가 잘려 시선이나 얼굴 표정, 안색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랑의 기호들은 엄청난 반발적인 문학을 먹여 살린다. 사랑은 외관의 미학에 맡겨진 채 재현된다.

-사랑의 단상(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02) 사랑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다. 근친일수도, 죽은 위인일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정신 분석학(라캉)이 한 말중에 - '억압된 것으로의 회귀'라는 말이 있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억압하고 스스로를 옭아매다 보면 이상한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상대방이 나를 좋아한다면, 비정상적인 어떤 행동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슬픈 사실이다.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소심한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답답해질 수 밖에 없다.






이건 단언컨대 소심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수많은 억압을 받으며 살았던 '한국 사람들의 유교식 교육'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이상하게 행동을 하게 되고 혹은 자신의 감정을 소실시킨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감정임에 확실히 알지못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스스로 억압 시킨 탓이다. 이에 대한 정신분석학은 '기호학 ~ 막시즘' 에 이르기 까지 롤랑바르트 저자의 책들만 잘 섭렵하면 완벽할 것이다.






3) 사랑의 표현에 대한 억압은 불면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원인은 '어린시절' 아이의 욕망을 파악하지 못한 부모의 행동이다.



사랑의 기호들에서 보면 롤랑 바르트는 말한다. “수많은 불확실하고도 의심쩍은 인색한 사랑의 기호들을, 또한 그 징조나 증거들(몸짓, 시선, 한숨, 암시, 생략 등)”. 우리는 사랑의 표현을 억압하기에- '사랑의 기호'로써 자신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게 돤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억압된 것의 회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는 것은,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가 말하는 바대로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에 해당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프루스트와 기호들(Proust et les Signes)과 추천드린 저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사랑의 기호'애서처럼- '사랑'이란, 재판장에 서기 전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하고자 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가장 나은 상황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며, 사랑하는 상대가 나에 대한 관심에 대한 마음이 애매할 때 - 그 마음은 누구나 상대를 알고자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아주 중요합니다.)






*위의 두 철학책은 '사랑의 정의'에 완벽에 가까운 철학서다. 지지부지하지말고, 장폴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만 잘 읽어낸다면, 사랑에 대한 표현과 눈치를 빨리 알아차릴 '힌트'들을 얻게 될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만일 내가 타자에 의해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사랑받는 자로서 자유로이 선택되어져야만 한다”








무의식적인 불안감과 상대를 알려는 욕망. 그렇기에 사랑은 '결혼'에 최악의 조건인 것이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의 비밀스러운 면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내포한다.



“난 널 사랑해”에는 여러 가지 사교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난 사랑하지 않아요.” “난 당신의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아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등등. 그러나 진짜 거절은 “대답 없음”이란 말이다. 나는 청원자로서뿐만 아니라 발화자로서도 (적어도 그 의례적인 표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부인되기 때문에 더 확실히 취소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부인된 것은 내 부탁이 아닌, 내 실존의 마지막 수단인 내 언어이다. 내 부탁만 거절하는 것이라면, 나는 기다렸다 그것을 다시 시작하거나 재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질문할 권리마저도 빼앗겨버린 나는 영원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의 단상




영화 한편 추천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In a universe of ambiguity, this kind of certainty comes only once, and never again, no matter how many lifetimes you live.”


사랑의 강도가 절절한 영화 이다. 소설원작시 1992년대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37주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에서만 850만부가 팔렸던 책이며, 영화로 제작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사랑에 대한 표현과 '일생의 단한번뿐인 진정한 사랑'에 대한 표현을 말하는 작품이다. 당신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사랑'을 좋아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 현 시대에는 부담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04)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대방으로 부터 약자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


프루스트와 기호들(Proust et les Signes)에서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은 우리에게 사유하도록 강요하고 참된 것을 찾도록 강요”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상대로부터 '나의 사랑의 양'이 가늠당하는 것이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를 전제로 사랑을 고백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부탁이나 사랑의 표현을 잘 해줘야 하는 일종의 계약같은 것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시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터 '내 사랑에 대한 진실'이 거짓이 되고 헤어짐을 선고받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지 알려면 '연락'을 보면 된다. 상대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확히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증거'인 것이다. 사랑을 하는데 연락이나 어떤 '프루스트의 사랑의 기호'와 같은 신호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건 아닌 것이다. 시인이 누군가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결심'으로 인해, 시인이 되듯이 말이다. '사랑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문인들중에 (진짜 비밀인데) 의외로 좋은 '시인'은 거의 없다. 



*



문인들을 만나보면 실망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쓴 글보다 표현이나 말들이 모순적이고 사실 혹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지 못한 표현을 서슴없이 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으로써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예의가 벗어난 말들'을 아주 교양있듯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말해버리는 문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쓰여진 '사랑의 표현'은 그저 '어떤 기교'에 불과하며, 진짜 사랑은 '연락' 그러니말 '말'에서 품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쓰는 말이나 억양은 태도를 내포하며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지 안하는 지를 인지하기 쉬운 탓도 그 탓이다. 


표현하지 않는 자는 애초부터 사랑하지 않겠다는 결론에 선 사람일테니, 사랑에 먼 사람인 것이다. 







출처 : 코람데오 닷컴


프루스트의 기호들에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에 대한 철학을 보면 한 대상을 이미지와 하고 그것을 언어와 하는 문법. 


그렇다면, 글을 쓰는 저자 (사랑에 가까워야 하는 직업들)들은 '사랑'을 그저 '정보를 교환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기호의 말들로써만 표출된다면 과연 그 사람은 의미로써 '시인'은 아닌 것이며, 사랑의 관계는 결국 정의될 수 없음에도 '싸우면서 그럼에도 불과하고 대화하고 지켜나가고자 하는 관계'임인 것이며, 사랑은 그 '함께'라는 의미와 동일어인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행복함의 목적으로 '사랑함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상대가 행복해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랑이 지속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랑 바르트가 말한 사랑의 살갗에 대한 표현도 '함께 있어야 함 = 사랑의 정의' 인 것이다.


롤랑바르트가 말하는 '살갗'은 '가장 근저한 감각'이라는 말이며,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느낌(사랑)은 두려움과 공포감을 포함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상대를 사랑하면 근저에 있는 그 느낌들이 진행된다. 너무 생각을 많이해 꿈에서도 나타나듯 말이다. 그렇기에 계속 두려움과 불안감이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해야만 '사랑'이 정의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언어는 '그 사람의 말'이 가장 중요하다. 목소리나 어투 억양따위들은 사랑을 결정짓게 되는 마지막 키이다.* 심지어 타인의 향이나 촉각따위들로 사랑이 발전되는 가능성이며, 반대로 감각이 사라진 상태의 '사랑의 관계'는 절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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