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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Oct 21. 2022

가난해지려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

보드리야르의 『사물의 본질』과 고영시인의 「사랑」을 통해 배우는 사랑



현대적 사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도구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조작되는 것이다.

《소비의 사회》







어떤 아이가 동전 한개, 두개를 돼지 저금통으로 애써 힘들게 3만원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꽃을 사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다. 두번째 아이는 집이 잘 살아서, 부모에게 받은 600만원으로 값비싼 옷을 똑같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럴때, 가난한 아이가 사서 준 꽃의 선물과 부자 아이가 값비싼 돈으로 준 옷의 선물 중 그 가치는 어떤 선물이 더 높을까?


세상은 기이하게도 값비싼 후자의 선물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타인으로 부터 양도받은 어떤 물건인데, 내가 필요가 없어 다시 누군가에게 준다면 그것이 아무리 값비싼 선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선물이 아닌, 위탁에 불과한 것이다. 






1)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는 자신이 직접 노동해 산 선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물은 '사용할 수 없지만 의미가 담긴 선물'을 하는 것이 좋다. 가령 '장미꽃'같은 선물 말이다.   



선물이란 가장 근사한 사례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상징적 교환에서, 물건은 객체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 경우 물건이 두 사람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를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 선물은 유일성을 지니며, 교환의 유일한 순간에 의해 명확하게 한정된다. 선물은 임의적이면서도 절대적으로 특이하다.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our une Critique de l'Economie Politique du Signe)



가난한 사람이 주는 선물은 받기가 어렵다. 과거에 가장 나에게 사랑을 선사해준 연인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새벽 일을 하는 사실'을 숨기고, 받은 월급으로 나에게 선물을 매번 해 주었다. 그의 말론, 부모님이 주신 매달 받는 용돈이라고 했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시간을 지나서야 안다.


그 사람은 내가 부담스럽게 느끼고 받기를 거부 할까봐- 선물을 용돈으로 산거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나는 마음이 아프기 보다 감사하고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편하게 주는 선물도 감사한 선물이지만, 


때때로 사람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행동을 포함해 그 '선물'의 기억이 남아- 오래도록 힘이 되는 것이다.






2) 선물을 하는 자에게 '자신이 한 선물'을 번복해서는 안된다. 선물은 '인위적이지만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3만원 선물이 800만원짜리 값비싼 선물보다 값어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선물을 자꾸 말하는 사람은 '댓가'를 바란다는 사람의 마음을 공표시킨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키웠지 않았니?'라고 말하는 희생의 경계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 만큼 폭력적인 것은 없다. 자신이 줘놓고 댓가를 바란다? 일종의 계약상태처럼 만드는 것이다.


선물은, '줬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며 다음에 오는 것도 '잊는'것이다.


기억은, 사람은 치사하게 만들고 자신을 비루하게 만드는 탓도 이것이다.


그렇기에 선물을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선물을 줬다는 그 행동만으로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아비투스(Algérie 60: Structures économiques et Structures temporelles)에서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말하는 대로 미래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가능성도 없다”라고 말했다.주고 받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어리고 유치한가' 그래서 선물을 하는 것에 대한 행위에 대한 복잡함으로부터 우리는보드리라야가 말한바대로 '인위적이며 절대적'이라는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체계의 현재 논리는 말의 극대화와 의미의 극대생산이다. 따라서 전략적 저항은 의미의 거부와 말의 거부이다. 혹은 시스템의 메커니즘에 대해서조차 극도로 순응하여 버리는 시뮬라시옹에 의한 저항으로 이는 저항이고 비-접견이다. 이것이 대중들의 저항이다. 이는 체계에게 자기자신의 논리를 다시 배가하여서 되돌려 보내는 것이며, 마치 거울처럼 의미를 흡수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것과 등가이다. (우리가 여전히 전략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이러한 전략이 오늘날 우세한데 왜냐하면 과거에 우세했던 것은 바로 체계의 저 극대 단계였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 「매체 속에서 의미의 함열」, 『시뮬라시옹』, 하태환 역, (민음사, 2001), 152-53.






3) 사랑은 '선물의 역할 분담'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체계'의 사상에 벗어날 수 있도록 죽을 듯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적으로 값비싼물건을 탐하는 연인들에게 자본주의는 치고 들어온다. 발렌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같은 날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도 인간의 우정사이까지 돈을 주고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그 선물. 반대로 가난한 아이는 그런 선물을 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 누군가가 받을 때 '줘야 한다는 생각'을 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쿨하게 받고 대응선물로 하여금 스스로를 상대와의 대응관계로 여기게 되는 그 느낌. 백화점을 위한 완벽한 명령이자 가스라이팅과 같은 것이다. 만약에, 극단적으로 누군가에게 어떤 선물을 받았다 해도 그 선물을 감사히 받고 '주지 않는 것이 바르지 않은 행동'이라는 원칙적인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누군가의 마음을 받는 것이 결코 '물질적으로 받고자 하는 마음'만이 있는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의 선물은 스스로 찾아지고 선택되며 커다란 흥분 속에 구입된다. 오르가슴과 같은 그런 흥분 속에. (…) 사랑의 선물은 경건하다. 상상적인 것의 삶을 조정하는 저 탐욕스러운 환유에 휩쓸린 나는 내 모두를 그 선물에 양도한다. 그 물건으로 나는 내 전부를 당신에게 주며, 내 섹스로 당신을 만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흥분하며, 당신의 욕망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적합한 물신, 찬란하고도 성공적인 물신을 찾아 이 상점 저 상점으로 해매는 것이다. 선물은 접촉이며 관능적인 것이다. 당신은 내가 만졌던 것을 만질 것이며, 이렇게 하여 제삼의 피부가 우리를 결합시킨다. 내가 X에게 스카프를 주자, X는 스카프를 매었고, 그 맨다는 사실을 내게 주었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이중 '선물은 접촉이며 관능적인 것이다. '라는 말이 중요하다.


선물은 사실 '내가 누군가에게 줘서 그것을 댓가로 무언가를 바라는 것'에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선물은 꽤나  ‘환유(metonym)’적이며,  실재적(real)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imaginary) 것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며 - 이러한 상상과 마음들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슬프게도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인류애 차원의 마음과 비슷함을 ..





더 나아가 이렇게 한문장을 정리하면 사랑이다.


(내가 행복하려고) 너에게 행복을 준다.


여기서 위의 괄호 () 를 뺀다면, 사랑을 넘어선 인류애의 사랑이 되는 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그 해탈의 경지 말이다. 내가 행복하려고 주는 선물이 사랑의 선물이라면, 내가 행복한 것마저 빼고 그저 주는것은 '해탈'의 경지이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을 망각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인생관' 그러니까 '선택'의 문제이다.



당신은 '가는 사람 안 붙잡고 오는 사람 안 보낸다'는 사랑의 선물을 주는 사람인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당신의 행복을 위해' 사랑의 선물을 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선물을 주고 받기 위한 일종의 계약과 같은 사랑의 선물을 주는 사람인가?


*사랑이 가진 매력은 '반자본주의적'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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