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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Oct 24. 2022

'결혼'이 사랑하기에 최악의 조건이 되어 버리는 이유는

헤겔의 '독일 변증법'과'알 베르트 경제',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1) 가족이란 것은 일종의 '연극의 캐스팅'이다.


당신은 가족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반대로 가족들은 '나에게' 관심이 있을까?

이 질문은, 꽤 예민한 주제라 고민을 하게 된다.








책 『인형의 집』과 김광규의 시처럼 '어떤 역할'로 존재하는 것일뿐이다.

주체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고 관심가지는 경우는 없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맞춰지듯 보여지는 가족 드라마들을 보면 굉장히 심각해진다.


'사랑은 정직함'이다.

내가 어떤 역할에 있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어떤 역할'로 부터 꺼내주는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매력이다.


정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들은 대개들 '아기'들과 같다.


글을 쓰는 사람. 작가(그들이) '아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글쓰고 표현하는 욕망이 '사랑받기 위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사실상 글쓰는 욕망과 직결하면 그렇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사랑이며, 사랑을 받기 위해 글을 쓴다. 그래서 좋은 작가는 정직한 글을 쓴다.


간혹 글을 쓰는 것이 '가면'이 되는 순간, 작가가 되도록 외롭고 힘들어 지는 것이다.

가족관계도 그렇다. 사랑이 소망스러운 감정임은 '최초의 나'를 알게 해줆이며 ..

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가족''직장'과 같은 것들이다. (소유권의 제도)





속상한 사실 사회현상사람들이 가난하고 약자에 대해서는 도울 의지나 따뜻한 마음이 많이 없는데, 이상하게 동물들에게는 그리도 애착이 강할까 .. 하는.. 생각이 든다.










2) 결혼을 하는 순간 '모든 계획'으로 현실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결혼의 핵심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 베르트 경제'와 같다.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의 인형의 집(Et dukkehjem, A Doll's House)(1878-9) 마지막 대목에 등장하는 다음 대화를 한 번 읽어보도록 하지요.

헬머: 당신은 이런 식으로 당신의 가장 신성한 의무를 무시하는거요?
노라: 내 가장 신성한 의무? 그게 뭔데요?
헬머: 내가 그걸 당신한테 말해줘야 하오? 당신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의무지, 아니면 뭐겠소?
노라: 나한텐 다른 의무도 있어요, 그것과 똑같이 신성한 의무가.
헬머: 그런 건 있을 수 없소. 도대체 무슨 의무란 말이오?
노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무요.
헬머: 당신은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아내이고 어머니야.
노라: 그딴 거, 이제 더는 안 믿어요. 내가 믿는 건 내가 그런 저런 것들 이전에 인간이라는 거죠, 당신처럼 …. 아니 어쨌든 이제 나도 인간이 되어보려고 해요.

-인형의 집






3) 죄인줄 알면서도 그 죄를 저지르는 행위 바로 사랑의 행위이기도 하다.


모든 율법과 보수적인 한국 사회의 집단에서 사랑이 힘듦 건 이 까닭이다.

연인들이 피상적으로 만나며 마음을 진정 소통하고 이해하기 힘들게 되는 이유도 이것이다.


대담하고 가끔은 주변의 사람이나 나의 위치에 벗어나

 '한 사람'을 위해 해주는 행위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성숙'이란, 감당하고 맨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동행자가 많으면 힘들다. 우리 스스로를 각자 너무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마치 등산을 갈 때 혹은 어디 여행을 갈때 혼자이거나 연인과 둘이서 다녀야 더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다닐 수 있듯 말이다.



하지만 개체의 수가 늘어난다면? 여행하고 같이 먹고 보고 느낄 경우의 수가 줄어드니, 결혼이 어떻게 행복할수 있는 조건이 되는가.


사랑일까? 아이를 낳아야 하고, 뭘 계획하고 등등등 분배하고 통제하는 조건이 늘어나는 것....





부부사이에서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 아니다. 비록 사랑의 감정이 실체적 통일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이 통일은 아직 아무런 대상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는 자녀에게서 비로소 이러한 대상성을 지니며 또한 바로 이들 자녀에게서 결합의 전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에게서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자녀에게서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마침내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의 사랑을 직감하는 것이다.

-법철학(Grundlinien der Philosophiie des Rechts)



함부로 '사랑'이란 말을 난발하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노력하는 것'이다.

제도에 치이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지키기 위해 오는 수많은 시련과 억압들 말이다.....





사랑은, 연인이 아픈데 내가 바빠도, 애써 가서 그녀와 그의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그런 것이 쉽지 않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익숙함'과는 다른 단어이다.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어떤 물리적행위의 측면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소비되는 관계로 전략되는 '결혼'의 제도는 명확하다.


묶이지 않아야 - 상대와 현실을 지키고자 얘쓸 수 있다.

그리고 상대와의 관계에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4) 연애기간이 짧은 사람들은 성숙해질 시간이 없다.

서로가 오래 만나고 아니면 헤어졌다가 만나는 그 기간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자유'를 주는 기간인 것이다.

하지만 소유를 당하고자 하며,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빠른 결혼'을 택한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서로의 엮어두고 잡아두려는 욕망과 계약의 조건들로써 결혼을 체결한다.



중요한 것은 친족공동체가 결혼을 조직하면서 동시에 가족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가족은 결혼을 매개로 해서만 생산되기 때문이다. 가족이 결혼을 매개로 해서만 생산된다고 할 때, 결혼의 방식이 가족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하여 소유물로서의 여자를 남자들끼리 교환하는 방식을 지닌 결혼이 가족의 가부장제적 구조를 가져오는 것이다. 즉 가족 내에서 남자는 주체인 것이고 여자는 대상인 것이다. 이처럼 하여 가부장제가 형성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사회적 수준에서는 친족공동체에서의 가부장들의 연합적 지배와 가족적 수준에서는 가부장의 지배가 하나의 구조로 접합된 남성지배가 가부장제이다. 이런 가부장제에서 두 수준의 남성지배가 서로 불가분리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회적 수준과 가족적 수준 사이의 이런 가부장제적 접합구조가 이른바 중세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


유교적 관계주의는 남성/여성, 적자/서자, 남편/아내, 아들/딸, 양반/상민, 장/유 등의 위계적이며 남성중심적 관계성을 기초로 하는 것이며, 인간을 개체적 존재로 보는 인식이 근원적으로 결여되어 있어서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지만 역할과 본분이 다르다’라는 허위 평등주의에 도달할 수 있어도, 사회·정치·경제·종교·문화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과 정의를 모색하는 페미니즘의 ‘평등적 관계주의’라는 대안적 원리를 제공할 수 없다.

-「유교와 페미니즘: 그 불가능한 만남에 대하여」



*

'기다려'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대중 가수 '현아'가 '던'에게 고백했을 때 썰을 프로에서 본적이 있었다.

던이 그때 현아의 고백을 바로 받았던 그 상황도 '사랑'이었다고 본다.


만약 사랑이 아니었다면 '내가 너를 기다릴께' 라고 했을 때, '그래'라고 했겠다.




사랑은 '상대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숙'이다.






어리숙한 사람은 잡고 있는다.

사랑은 '자랑의 욕구를 버림'에 있다.


마치 상대를 '악세사리'처럼 지인들에게 선언하고 소개함은

'사랑'이 아니다. 구속의 경계선상에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예전에 신해철 가수님께서 '간통죄'를 반대한 말씀이 명확히 옳은 것이다.

결혼함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러니 신해철가수님이 위대하신 분이신 것이다.










아빠가 아이를 사랑한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를 매개로 결혼은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는 아빠를 사랑한다.

이것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이라고 한다.


어느순간 내 감정을 착각에 빠트리는건 아닐까.

내가 느끼는 사랑이 어디서 도래 되었는가.


의문을 던져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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