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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Dec 08. 2022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과 동양사상들

전자본주의와 이후 자본주의 시대에 사랑의 단상은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가?


작가는 타자를 '분류화 하는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분류 = 폭력적으로 타자화, 대상을 쪼개기)

*concept = con(함께) cept (잡다) concept는 분류하다는 뜻이다.'개념화 하기 가장 힘든 단어'







20세기 모든 현대철학 비평은 모든 concept를 비평하고자 합니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concept의 분류(배제)의 생각은 아주 폭력성을 가지고 쪼개듯 생각해 버린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을 학연으로 분류 시켜서 덩어리로 생각하는것 = (타자화) 인 것입니다. 슬픈 사실은, "나"에 대해서 타자화가 되면 자신의 객관적 본질로 자신의 생각과 감각을 죽여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삶은 감각을 키우면 행복해질 수 있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내에서도 불필요한 사건들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감각'을 키우는 것은 중요합니다.오늘은 이에 대한 글을 쓰겠습니다.


양질의 패키지 칼럼이니, 잘 소화해내시길 건투를 빕니다!


1) 글을 잘쓰는 핵심이다. 많이 읽고, 보고, 듣고, 사유하고, 필사하는 방법 이외에 중요한 것은 글의 '배치'이다. 독자들이 다음 문장을 놓치지 않고 읽기 위해서는 양질의 단어와 문장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할 도박들의 문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잘 고려해야한다. 


퇴고의 반복과정 그리고 피드백이 분명 필요하다. 무엇보다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도 건강하게 지켜줄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들 정신과에서 심신이 미약한 자들에게 제시하는 심리치유방법중 대표적인 것이 '일기쓰기'임은 여기에 한 몫한다.


서두를 들어서기 전, 추천 드릴 영화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이번 칼럼은 길지 몰라도,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최고의 자료들을 담은 '2022년 패키지'이다.




【자기 타자화를 줄여줄 영화 추천 ��】

▣ 에곤쉴레(욕망이 그린 그림)*디터 베르너
▣ 캐롤*토드 헤롤즈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루카 구아 다니노
▣ 라붐(소피마르소의 리즈)*클로드 피노토
▣ 네 멋대로 해라(뉴욕헤럴드 튜리뷴!)*장 뤽 고다르
▣ 퐁네프의 연인들(2번이나 추천)*레오 까락스
▣ 시민 케인(Citizen Kane)(1위추천)*오손 웰즈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히치콕
▣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스탠리 큐브릭
▣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진 켈리,스탠리 도넌
<추천 이유와 출처>

본 영화 목록은 지극히 개인적인 추천 영화 목록으로,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의 시대에 알려진 '꼭 봐야할 고전'중의 선별하고 선별해 적었습니다.










2) 문학은 감각력이 타고난 사람들이 할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직감력들을 타고 난다. 그렇다면, 글을 쓰면서 감각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물감을 휘젓는 문학가들은 예민해야 할 것이다. 둔감하고 허울속에 차서 '작가'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멋스럽게 포장해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생각한다. 오랫동안 진심을 다해 문학을 공부한 누군가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노동자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비록 등단을 하거나 자신의 명예를 살릴 명함하나 없는 인생이지만, 힘들게 삶을 적응하며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삶을 정직하게 숙고한다.



시인은 자신의 '행위와 감수성'으로 인해 지표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 1. 문학자들은 '상처'속에서 태어난다.



허먼 멜빌의 『백경』(모비딕)이라는 책이 있다. 단순히 선장의 고래사냥 모험담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예민한 자들은 허먼 멜빌의 『백경』이 모험 스토리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진짜 위대한 문학자들은 자신의 그 시대적 아픔과 감성들을 담아낸다. 그래서 한 권을 오래 읽고도 잘 알아차리는 것이다.


(악몽을 반복해서 꾸는 이유는, 자기 경험에서 오는 끔찍함을 둔감하게 만들기 위해 뇌에서 반복적으로 '꿈'으로 나타나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꿈으로써 욕망이 실현되지 못하면 '노이로제'가 온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 2. 전자본주의의 낡음을 버린 자본주의의 욕망



인생도 그렇다고 본다. 간단히 넘어가면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태생에 문학가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예민해서 문제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문제들을 온 몸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선지-) 그것들을 글로 표현하는데 탁월함을 선보인다고 본다. 글또한 상처를 응시하는 연습이니 말이다.



니체가 말했다. 모든 이들이 '시인이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책을 출판한다는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시인이라 함은, 의사와 교사 그리고 검사와 같은 직업처럼 윤리적 의식이 조금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다면 짐멜의 백경이나 이상의 날개를 잘 읽을 수 있을 수 없다.



혼자서 문학을 공부중이다. 나는 아쉽게도 좋은 교수와 선생님을 고교때 딱 한번 만났다. 그 이후 나를 끌어주거나 잘 가르쳐준 좋은 어른들을 만나지 못했다.



본론으로 돌아가,『날개』 도 『백경』도 결국에는 대도시가 들어선 자본주의 시대안에 가난한 소외계층의 거친 삶과 슬픔을 말해주고 있다.


(이 시대에는 대자본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빈곤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한국 시대에는 1930년 모던보이가 있던 일제시대다. 당시 사람들은 일제 식민지 취하 아래 외국으로 부터 수입되는 것들을 즐기며 '김기림' 시인처럼 외래어가 섞인 특유의 모던보이 감성의 문학들을 집필했던 분위기가 가득했다



* 3. 미스보시(일제)와 1920년 모더니즘



서양에서는 발터 벤야민과 시인 보들레르가 있고, 보들레르가 쓴 책 중 『악의 꽃』이라는 책도 있다. 관련 시대에 대표한 반자본주의 책들이다.





◈ e.f 슈마허 『자발적 빈곤』


◈ 김유정 『동백꽃 봄봄 산골 나그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 수전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 보들레르 『악의 꽃』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1930년대 패혈명, 폐결핵, 골수암과 같은 질병에 대한 애정을 매혹을 말하는 책인데, 당시 유럽의 살롱에서 웨이트리스에게 폐결핵으로 인한 피가 묻은 손수건을 문학가들이 건네주기도 했다 한다. 책을 읽어보면 흥미롭다.



*4. 대안을 제시하라는 폭력성. 70년대 보드리아의 사유.



나쓰메 소시키는 보들레르와 이상보다 더 트라우마(상처)에 민감해서 글로써 자꾸만 강박적으로 연상을 보여준 작가다. 그는 글을 써야만 자아가 분열되지 않았다. 최고의 문학가였다.




“인간 존재는 인정받고자 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인되기를 원한다. 인간 존재는 존재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때로 자신을 부인하기도 하는 타자를 향해 나아간다. 그 결과 인간 존재는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즉 자기 또는 분리된 개인으로서는 존속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의식하게 만드는, 상실의 체험 속에서 존재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인간 존재는 자신을 항상 미리 주어진 외재성으로, 여기저기 갈라진 실존으로 체험하게 된다.”

                                         -블랑쇼(M. Blanchot), 『밝힐 수 없는 공동체(La inavouable)』







그런데, 왜 일반 사람들은 상처 정확히 주변의 타격들에 왜 둔감해질까?



타인과 세계에 대한 상처에 둔감해진 어른들은, 그것에 '적응이 되었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그동안 받은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 것이다.


현재의 상처들에 둔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시하기엔 두려운 것이다.



상처가 심화되고, 사건이 더욱 복잡해지는 곳은 '도심'이다. 화폐 가치를 정확히 아는 곳, 이웃과의 물물교환과 같이 옛 정들을 모르고 '돈'은 쓰지 않고 모은다. 서구에서 말하는 욕망의 집어등. 불을 보고 달려들다 감전되어 죽는 물고기처럼 세속적인 현대 사회..인문학자는 등불을 붙잡지 말아야 한다.








3) 사랑했다면 문제는 없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서로가 사랑하지 않아서다. 과거 진나라 당시에 '법치'로써 세워졌던 이유도 여기 있다. 서로가 힘을 겨루어 대치 상태로 -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동지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나라의 법은 그렇게 냉혹하게 쓰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핍박할 것이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신분이 높은 자는 비천한 자를 경시할 것이고, 약삭빠른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기만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반대하면 무엇으로 그것을 바꾸겠는가? 묵자가 말했다. “서로 사랑하며[兼相愛] 서로 이롭게 하는[交相利] 원칙으로 그것을 바꾼다.”

                                                                                     『묵자(墨子)』「겸애(兼愛)·中」




진나라가 몰락한 이유는, 황후와 같은 귀득세력들 때문이었다. 기존에 남아있는 기득권 세력들은 절대 자신의 힘을 나눠주려고 하지 않는다.



최근에 아는 지인 선생님께 드라마 한편을 추천 받았다. "혜주씨, 드라마 잘 안보시는 편이시죠? 근데 이 드라마 한번 보세요. 진짜 추천드리고 싶어요." 송중기가 나오는 드라마인데, 세번째 재벌집 막내아들인가? 재벌집 세번째 막내 아들인가?



드라마를 보면서 돈이 많은 집안일수록 살기가 가득하고 형제도 형제가 아닌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살육..형제간의 배신.. 공자와 묵자의 '인' 떠올랐다.





돌아가 진시황은 나쁘고 악독한 정치를 펼치면서 한나라의 법을 시행하면서 끔찍한 민중들의 삶들이 느껴진다.. 약 30년간 전쟁으로 흉노는 크게 패하여 급속히 피폐해졌고, 한무제가 대외원정을 위해 개정한 법안을 악용하여 대토지를 소유하기 시작한 호족들에 의해 한나라는 땅을 잃고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생겨났다. 이 전쟁으로 인해 ‥(중략)‥

                                                                                             - 출처 : 위키백과 〔한나라〕





부잣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의 명분이다. 명분을 훼손시키지 않는 습관의 교리들은, 한국의 유교사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타인의 배려는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에게 주는 교육. 진실은 '겉으로만 포장된 희망'같은 것이 있다.



한나라와 달리 진나라는 '유교적 사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역사들에 유교사상이 있음은, 한나라의 법에 따른 유교적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이 많이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제2차 세계 대전, 홀로코스트 영화. 유대인들은 각국의 나라에 분포해 있었다. 독일군들이 유대인들을 잡아다가 학살했던 그 시기의 역사를 가장 슬프고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비극의 음악들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그런 말이 있다.



'잔혹함은 한가로운 자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이 말은 바쁜 노동자들로 부터는 잔혹할 시간마저 없었던 시대를 이른 말이다. 주변에서 '너희 한국은 언제 전쟁이 날 줄 모르는 데 겁이 안나?'는 말을 서두로 꺼내기도 한다. 한국은 북한과 대치상태만 아니었더라도, 다른 유럽국가처럼 이주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이 분단된 그 시기를. 사람들은 통일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힘들더라도 통일을 지향하는 편이라. 한국 사람들이 힘들게 버티고 있을 지금 하루하루는. 위험스러운 세력들 아래 진나라의 만리장성만큼이나 단단하고 빠르며 때로는 위태롭게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중 '뮬란'. 여자라는 이유로 늙은 아비를 전쟁으로 보내는 것을 슬퍼해 대신 남장을 하고 전쟁에 보병으로 참관한다. 보병들의 편견없는 터프함들. 폐허가된 마을의 서글픔..



사랑이 있었다면, 전쟁은 없었을 겁니다.



효도가 변질되어가는 느낌이 있지만. 어떻게서든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아낄 수 있는 견해들을 많이 나누면 좋겠다. 춘추전국시대의 묵자의 사상. 약자를 수비하려는 고뇌. 21세기엔 서로간의 *겸애[兼愛]가 필요해 보입니다.




* 묵가 "겸애”는 상호 관심과 배려를 가리킨다. 혈연과 친소관계의 여부와 무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남을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는” 보편적 사랑이다.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 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의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 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 한다 



                                                                                       - 시집 『그리운 1』 문학과지성사, 1996








4) 인지편향의 위험성을 아셔야 합니다.



인지 편향 [ cognitive bias , 認知偏向 ]


휴리스틱이란 시간이나 정보가 제한되어 있어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울 때, 또는 굳이 합리적 판단을 할 필요가 없을 때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신속하게 정보를 단순화하여 사용하는 어림짐작을 가리킨다. (…)인지편향은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고, 개인의 지각을 왜곡할 수 있으며, 자칫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타인과의 상호 작용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날이 흐리고 겨울이 다가옵니다. 저는 '생각이 없다'는 말을 나쁘게 생각 안합니다. 의외로 생각이 많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생각이 없다 함은, 타인에 대한 예의마저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태도를 말한다기 보다, '이미지'화 하지 않고 존재를 바라보는 존재로써 저는 해석하고자 합니다.









과거에 저는 공장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외에도 카페 마트 야채가게 동물병원 사진관 영화관 등등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

*


주변 사람들이 종종 말을 합니다.


"네 나이 때는 연애도 하고 여행도 가야지." 저는 이 말이 너무 편향적이라 봅니다. 체력의 문제도 있겠지만 때에 따라 여행을 감으로써 더 마음이 힘들어진다면, 자신의 방법대로 가만히 쉬어주는 것도 하나의 휴식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경험에 의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분별로 가려냅니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돌아가, '생각이 없다'는 지관 [止觀] 으로써 세상의 현상만을 고요히 느낄 뿐, 자신의 생각을 넣어 해석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알아차릴 뿐인 것. 그것이 꼭 다른 곳에 가서 얻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스피노자와 니체에 많이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의 감각에 대한 사유, 중요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 분별하고 타인을 판단하는 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여 알게 모르게 자신과 주변의 세상을 어렵게 만든다고 봅니다.



지관 [止觀] : 마음을 고요히 하여 진리의 실상을 관찰하는 불교수행법. [내용] 지관은 지(止)와 관(觀)의 합성어이다. 지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이 적정해진 상태이며, 관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실상(實相)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인지편향[ 認知偏向 ]'를 예로 들어, 여러분들에게 멸시와 모욕을 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마음을 수치스럽게 느끼고 속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타인을 어떻다고 규정짓는 순간 화살은 자신으로 돌아와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처럼요.



다행히도, 저는 비정규직 알바를 하며 살았던 20대 후반시기. 정말 너무 힘들어서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웠을 때 무렵 (절정으로 고통일때가 29살이었는데) 과거를 잘 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경험되는 새로운 것들을 허용합니다.



뭐 별거 없는 인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강도의 멸시와 없는 존재로써의 무시들을 당하면서 '과거를 잘 잊어버리게 된 나'도 '타인과 헤어짐이 슬프지 않게 된 나' 도.. 그리고 불현듯 저는 갑작스레 집을 떠나거나, 사람과의 이별을 해서 사라져 버리면서 더이상은 뒤로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넘실거리는 고요한 강은 바다의 끝으로 넘어갑니다. 계속 걸어가세요. 멈추셔도 좋습니다. 다만 타인으로 자신의 생각이 더럽히지 마세요. 그러기엔 당신들이 너무 소중합니다. :) 





헤겔의 입장에서 인간과 모든 다른 생명의 차이는 '자기 반성'이라고 합니다. 다른 모든 물질 가령 의자, 양말, 나무, 꽃, 구름 모두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다 생각을 하고 인지 한다는 것. 다만 인간은 '자기 반성'을 하는 사람으로써 말을 할 수 있다는 '부정에의 부정(A = - [ -A] )'이라는 말 '정반합의 이론'도 여기 기반합니다.



삶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만, 사람들을 믿지 마세요. 그것은 피해의식도, 편집증도 아닙니다. 사람들을 믿는 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 타인에게 뭔가를 바라게 되게 만들며, 자신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아! 코제브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적어 보았습니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연법이지만, 저는 노숙자가 되거나 언제 죽어버릴지 모르는 한 인간으로써 낙엽한장 떨구듯 글을 남겨봅니당. 마음에 오래된 것들을 하나 하나 버려 봅니다. '내일'이라는 쪽지만 남깁시다.








5) 진실을 짐작하지 맙시다.



실제로 상대가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기전까지는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 추측하는 태도들은


진실이 아닙니다. 중요한건. 상대와 내가 얼마나

'닮았는지' 가 아니라, '다른지' 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노력만큼 더 중요한건 '자신감, 용기, 믿음'

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슬리데린 (순수혈통의 마법사이지만 볼트모트와

그들의 세력) 마치 뱀처럼 유혹하고 독을 줍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떤 자신의 길이나 꿈은 상황에서


당신의 내면에 있는 '스스로의 믿음, 자신감,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누가 뭐라든!



그것들이 허망한 유혹과 주변의 불안들을 밀어내고,


행복했던 기억을 빨아들이는 자신의 검은 그림자를


밀어내주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정해지고 예견된듯한 필연적 운명'들만이 걸어나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이 진짜 믿는 그 표상..


그 믿음이 진실하다면, 어떤 꿈이든 그것이 '당신의 미래' 입니다.






★ 현재는 하루만큼의 금액의 값(Present) 이며,


 당신의 미래는, 과거의 교훈들과 재산(worth)  입니다.



그러니 아프지 마시고, 믿음대로 자신감있게 사시길 :)


굳게 응원 드리겠습니다.



:


*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되시길..�☘️ (저 무교 입니다.ㅎㅎ)






from. 2023년까지 한 달 남았는데 부디 건투를 빕니다.

죽지않고, 현재를 부여 받은 이 글의 주인공은 당신인걸 잊지마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여러분들은 '21세기 최고의 영웅들' 이십니다. 화이팅 !








마지막으로 2023년 한달 남았으니, 좋은 시와 좋은 문장을 하나씩 적어보겠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구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브런치 작가가 되겠습니다. 구독은 인연의 끈입니다. :)



네가 버리고 간 오후를 줍는다
버림받은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손톱으로 꾹꾹 눌러
구겨진 시간을 피고 길을 만든다
너는 가고 낡은 광주리에 담겨있던
네 그림자를 내다 팔기 시작한다
네 다리를 한 짝 내어주고
길 위에 심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산다
네 남은 다리 한 짝을 마저 주고
사과나무 여린 잎의 그늘을 산다
다리 없는 너를 안고 나무 아래 누워
네 차가운 배를 어루만지고
네 눈알을 만진다 팔과 머리통도…
길 밖에서는 해가 진다
저녁도, 밤도, 이곳에는 없다
네 눈을 팔아서 아침을 사고
따스했던 네 두 손을 팔아
사과나무 뿌리를 적실 이슬을 사고

-천혜은, 「너를 팔아 사과나무를 산다」


우리는 결코 (무로부터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백지(tabular rasa)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중간(milieu)으로 미끄러져서 들어간다.
우리는 리듬들을 취하거나 아니면 리듬들을 부여하기도 한다.

-스피노자: 실천철학(Spinoza: Philosophie practique)








행복하세요. 아직은 부족한 신입 브런치 작가이지만, 훗날 당신들에게 매일의 선물을 한 편씩 직접 전해드릴 수 있는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도록 바랍니다. 여러분들 힘든 순간이면, 제가 열심히 힘이 될 글들을 모아 준비하고 또 열심히 드리도록 할테니, 잊지 마시고 절 찾아와 주신다면 저는 몇 배 이상 값어치를 드리겠습니다.



 2022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정성어린 칼럼 끝마치며- 몇분 안계시지만 구독해주신 분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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