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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Feb 23. 2023

죽고 싶어지는 날에는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낙타가 아니야. 우리는 다른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사였어.








이탈리아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The wind-footed steed is broken down in his speed, whilst the camel driver jigs on with his beast to the end of his journey.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말은 점점 속력이 둔해지지만, 낙타를 부리는 사람은 여행지까지 줄기차게 걸어간다.











어느 서른의 날이었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해야 하는 일'이 가득해진 서른에 접어들었습니다.

순수함을 느끼던, 생경함을 자주 느끼던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 였고 내 등에는 짐이 가득했습니다.

거북이가 토끼보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건 토끼가 쉬었다는 점 보다 거북이가 꾸준히 갔다는 점.

낙타의 짐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불교의 말이 떠올라 '낙타를 비관하는 생각'에 빠지고 말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서른이 된 시점에서 나는 일을 하고 내야하는 공과금과 세금 그리고 연금등이 놓여 있었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제 시간이 없다. 결혼은 안하냐. 남자친구는 왜 없냐. 돈은 얼마 모았냐. 집은 마련안하냐."


그 말에 난 지난 이십대를 돌이켜 본다면, 사회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사람임에 분명했습니다.

그때는 좋아서. 수업시간에 공부보다 책이 필요 했고, 대학시절에는 전공보다 사진찍기에 빠져 촬영일을 했고,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뛰며 남들처럼 모은 돈으로는 내게 사치 같은 값비싼 장비와 책들을 샀습니다.





그러니 나는 서른에 겨우 남들만큼도 아닌 작은 돈을 모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산 만큼 연애는 안중에 없어서 결혼은 물론 남자친구도 당연히 없는 것이었습니다. 집보다는 다양한 생을 경험하고 싶어서 고시원, 오피스텔, 단독주책, 찜질방에서 한달 살아보기, 벤치에서 노숙해보기, 새벽이 될 때까지 산을 올라보기를 했고.. 그런 나의 호기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면 늘 집을 떠나 한국의 평범한 20대처럼 호기심으로 돈을 썼습니다.







결혼을 한 친언니가 아이를 낳을 쯤, 나는 부모님께 더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버렸습니다. 서울에서 사진을 찍고 그것이 돈벌이가 되느냐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눈물을 삼키고 어느날은 고시원에서 못이룬 작가의 꿈을 잡겠다고 우울증을 앓으며 지냈습니다. 누구도 좋게 보지 않을 '국어국문학과'라는 그것도 좋지 못한 평범한 사립대학교 4학년에 졸업한 나는. 늘 서울에서 비교대상이 되고, 제일 낮은 하위급에 있었습니다.


학벌이란 것이, 집안형편이라는 것이, 나의 그 왕성한 호기심으로 쌓은 지난 경험대신으로 지불받은 건 홀대하는 회사의 사장태도였습니다. 어느날은 예고없이 해고를 당했고,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마지막 불을 지피려 공장에 갔습니다. 거기도 탐탁치 않아 숫기 없는 나는 양아치 같은 공장의 한 여자애들 무리에서 왕따를 당했고, 어머니는 뒤늦게 서울에서 사진을 찍고 잡지사에 어시스트로 일하다 처량하게 공장에서 일을 하고 와 밥을 먹는 날 묵묵히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국문과를 졸업한 24살쯤, 어머니는 내게 매번 언니가 한 결혼과 쓰지 않고 든 모은 돈을 얘기 하며- 너는 언제 철이 드냐며, 하고 싶은 것만은 할 수 없다고 욕을 매번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지만, 그 시절 사진쟁이와 잡지사 어시로 본 200만원으로 '강남에서 홍대에서 평생을 예술물을 먹고 산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학원을 다니고 밤을 새며 글을 썼습니다.






"야 너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인정을 받을 쯤 나는 이미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이쯤하면 성공했다. 나는 완성했다. 여기서 더 높은 담을 쌓을 필요가 있을까? 집으로 내려가서 공장일을 한건, 차라리 그 전에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무표정으로 일을 했고 그토록 원하던 출판사 편집자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장은 여전히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주인공은 좋은 집안에 학벌을 갖춘 나보다 어른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회식은 제외되었고, 보수적인 작가들의 회식모임에 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는 법을 잊어서 늘 책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잡지사나, 출판사나 어느곳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도 늘 변두리인 사람이 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진실이라 당신은 나를 삐딱하고 열등감에 쩔은 사람이라 볼 것인가요? 저는 계약직일을 마무리 했고, 그동안 떠돌며 자취생활을 하다 부러진 발목하나를 치료하면서 쉬는 중입니다. 저는 죽어야 했다고 무표정한 얼굴에 글귀가 드문드문 떠올라 심리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우울증세가 심한걸 몰랐어요?"


"저는 그래도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어요. 그냥 생각이 그럴뿐이예요. 죽어도 덤덤할 거예요."


"혼자서 스스로를 잘 위로하고 칭찬해줘요."


그 상담사의 말은 처음이었다.

"나를 어떻게 위로하죠?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 거죠? 방법을 알려주세요."

"일기를 쓰세요. 어머니의 비난으로 착한 아이 증후군에 벗어나야지요."


나는 그 말이 귀에 걸렸다. 나빠서일까. 아니 내 생각을 해준 오랜만의 답변이어서.

"네. 그럼 저는 온전한 사람인가요? 늘 어디서든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아요."

"부족하다 느껴요?"

"네. 학벌이요. 그리고 제 자신의 형편이요. 그래서 제가 못하는 일들은 꼭 해내야 하는 강박이 있어요."






상담사는 힌트를 제시해주었다. ( 비아냥 거릴까봐 하지 못한 나의 속마음을 다 털어 놓았을때 말이다. )

"못하는 걸 채운다고 자신이 완벽해지지 않아요. 자신이 잘하는 걸 발전시키면, 못하는 건 아예 생각하지 않게 되는 거죠. 이렇게 예쁘시고 키도 크고 말씨도 고우신데, 열심히 공부도 하시고. 기죽지 마요. 멋있어요."





그 날 저녁 나는 펑펑 울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시절 떠난 그 기억으로 부터도, 떠나야 했다. 홀어머니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오로지 나 혼자서. 걸어야 했다. 그것은 외로움이 아닌 '자유'였다. '어른스러움'이란 그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어머니의 그간 노고를 존경하게 되는 동시에 가벼워졌다.






나는 나로 살아야 겠다. 행복해지자. 죽지말자. 방법은 없는 세상이니.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말해주겠다. 낙타는 짐을 싣고 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면,

사랑은 낙타의 영혼에 짐을 싣는것이어서, 낙타를 죽이지 않고서는 사랑은 죽을때까지 따라오는 것이니.

당신은 낙타가 아닌 어느 마법사가 되어야 겠다. 변신하거라. 머릿속으로 상상한건. 당신의 세상.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너무나 많은 지식, 너무나 많은 성구, 너무나 많은 제사의 규범, 너무나 지나친 금욕, 너무나 지나친 실펀과 노력이 자아를 죽이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는 오만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 승려라는 근성 속에, 오만 속에, 영적인 것 속에 그의 자아가 웅크리고 확고하게 자리잡고 앉아 자라나는데, 그는 단식과 참회로써 헛되이 그것을 죽이려고 애썼던 것이다. 이제 그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가슴속의 음성이 옳았음을, 어떠한 스승도 자신을 가르침으로 구제할 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 안의 승려와 사물을 죽게 하기 위하여 그는 세상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고, 쾌락과 권세, 여자와 돈에 자시을 상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중략)… 그 끔찍스러운 몇해를 견뎌야 했고, 혐오감을, 황량하고 타락한 생활의 무의미와 공허를 견뎌야 했다. 그는 죽었다. 그리고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싯다르타 역시 늙을 것이다. 그 역시 언젠가는 죽어야 할 것이다. 싯다르타는 무상한 존재였다. 무릇 모든 형상은 무상했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젊고 어리며, 새로운 싯다르타이고, 기쁨으로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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