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피크로스 등의 중요한 면모를 놓쳤다. (사유의 여러가지 독특성을 모은 히스토리. 하나의 예에 불과)
헤겔은 유물론이라는 정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즉 대강 보는 사람들은, 헤겔과 막스의 차이를 모른다. 그렇기에 노력해야 하고 사이와 사이를 봐야하고 동일성이 아닌 경우의 수도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3.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서 국가의 목적은 자유에 있으며 국가들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17세기 에는 군주와 교회의 복종을 삼고 있었다. 그래서 국가에 대한 자유를 요구한다. 특히 사상에 대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사상의 억압에 대한 문제가 컸다.
막스는 19세기에 스피노자를 보았다. 청년 헤겔파 논쟁 (신앙론적 문제) 이때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였다. 신학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프로이센 당국은 프랑스 7월 혁명 이후 언론을 강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검열'이 대폭 강화되었다. 이런 평행적 사고(표절) 한 막스의 논문이 있다고도 한다.
스피노자
스피노자를 놓고 막스를 보면 헤겔과는 다른 사회의 전통이 보이는 데 이것이 바로 '유물론의 계보'인 것이다.
'철학의 계보' '우발성 유물론의 계보' 철학을 '히스토리'로 볼 것이냐(이념- 단계= 철학사), '말과 사물' (고고학적)
(구조적인 사유법), 또는 계보학적(니체의 사유 유형들, 다르지만 어떤 타입, 유형들을 묶어 유사성을 말하기도 하는)
으로 말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이 대립은 헤르메스(신의 해석자=신학자)가 프로메테우스(철학자, 니체)에게 '제우스의 종살이'를 요구하자 이를 거부한 프로메테우스는 '바위를 나르겠다'를 자진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에피쿠로스(헬레니즘 시대)'이 세계'에 '가른 삶'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헛된 망상이나 환각, 미신을 말하는 것이 아닌 자기 삶을 가꾸고 주권적 삶을 사는 것.
자기 긍정, 초월성의 철학구도(신학적 구조)을 지적한다.이는 내세의 삶안에서 해결하는 '에피쿠로스 정신'이 막스의 정신이며, 이는 기독사상에 반발을 샀다.
아타락시아의 철학언어 (자기 의식 갖기)가 필요한 것. 헬레니즘 시대의 삶을 '자기의 독특한 삶을 살아내는가'의 물음인 것이다. *삶의 주권성을 주장하고, 자기 역량을 강조해야 한다. 자기 무능력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막스의 논문 참고>
4.
모든 운동 (클리나멘)은 심리적 자유가 아니라 자연의 우발적 사건의 문제다. 정해져 있는 충돌을 깨는 세계의 움직임처럼 사건이 우발적이지 않게 일어나 깨지고 사건이 커지는 것이다. 이는 신은 영향을 주고 있지 않으니 자기 복이나 누려라는 말로 니체가 '신의 죽음'을 말하게 된다.
즉, '사건'이 있지.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는 나의 주권성(아타락시아)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물론자들은 '신'이 아닌'사건'을 주목하고 사건을 찾는다.
*부동의 동자(에피쿠로스, 원자의 타자)를 거부하고 클리나멘이 있다 (내안의 원자, 제1원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