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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Oct 27. 2024

함께 읽는다는 건

과학이란 지식에 관한 것입니다. 반면 픽션은 감정에 관한 것입니다. …… ‘예술’은 장식이 아닙니다. 예술은 문제의 본질입니다. 예술은 우리 마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타오르는 질문들』 p. 40     


처음엔 뻥튀기랑 쥬스, 책을 들고 방으로 쏙 들어가는 아이를 보니 서운했다. 

그림책을 읽을 때는 함께 봤지만 아이가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무슨 책을 읽는지, 얼마나 재미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으로 『빨강머리 앤』에 대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기억력 부족으로 이어갈 수 없었다. 


처음이 어려웠다. 

아이는 동화책을 읽고 나는 주식 책을 읽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추천도서 리스트만 보고 동화책들을 빌려다 주면 되는 줄 알았다. 어떤 책인지 모르고 나르는 일에 차차 한계가 왔다. 좋은 책을 만나고 싶어졌고, 표지만 보고 고를 수 없었다. 


책을 좋아했던 아빠와 어린 나, 우리가 같은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재미있었다. 내 책을 읽을 때는 이번 챕터는 몇 페이지를 더 읽어야 끝나는지 자꾸 확인하며 읽었다. 재미있는 책이든 없는 책이든 집중력에 한계를 느꼈다. 동화는 비교적 짧고 얇아서 부담이 없었다. 


얼마 전 읽었던 동화가 마음에 남았다. 

제주 해녀 왕할망 할머니의 잡아가지 말라는 잠꼬대로 시작하는 『동백꽃, 울다』.


 제주 4·3 사건의 눈물을 다룬 동화였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은 날들을 건너온 할머니의 이야기. 사회 교과서에 나올만한 이야기. 국가적 폭력에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라고 배우게 될 이야기를 아이들은 얼마나 실감할 수 있을까. 


왕할망과 죄없는 아버지가 끌려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숨어 바라보던 어린 길녕이를 만난 아이들은 자연히 그들의 마음을 기억할 것이다. 문학 작품이 역사 속 희생자와 남은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기억하고 함께 하는 길을 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는 동화가 엄연한 문학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음’을 다룬 예술이라는 것을. 동화를 읽으며 아이들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속한 세계에 보이지 않았던 허점도, 어둠도, 희망도 보였다. 아이들의 마음 구석구석도 상상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같이 읽으세요.
10대 초반을 위한 문학 작품은 어른에게도 멋진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아이들이 읽는 책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걸
보여 줄 기회이기도 합니다.     
독자 기르는 법, p. 130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뒤에 책 읽지 않는 나라에서 나온 노벨상이라는 기사가 떴다. 

책 읽는 아이들보다는 핸드폰을 들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이 보인다. 나를 포함해 책 읽는 어른들보다는 잠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자라는 중이다. 


어린이를 독자로 하는 책이지만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아직 나도 많은 동화를 읽지는 못했다. 동화의 매력을 알기 시작한 정도다. 나는 동화가 아이들의 마음을 그린 예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주변에 많은 어린이들에게 요즘 마음은 어떠냐고 묻고 싶다. 동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그래야 할 것 같다. 


많은 엄마, 아빠, 이모, 삼촌들이 동화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읽는 일이 소중한 어린이 독자 한 명 한 명을 지키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청소년 소설까지 따라가 읽고 싶다. 연애 이야기가 나와 아이가 혼자 읽고 싶어 한다면 나도 연애하는 기분으로 혼자 몰래 읽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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