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이라는 말에 숨은 감정

by 미냉

“제가 잘못한 걸까요?”

“누가 더 잘못했는지 객관적으로 봐주세요?”

요즘 인터넷에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사연이 넘쳐난다.
소개팅 문제, 시댁 갈등, 친구와의 다툼까지.
사람들은 누군가의 객관적인 판단을 구한다.
댓글로 “이건 상대가 너무했네요”, “님 잘못 없어요” 같은 반응이 달리면 안도한다.

하지만 정말 불리한 판단이 나와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무엇보다, 자기 손으로 써 내려간 사연에는 이미 ‘객관’이 없다.
이건 내 이야기고, 내가 본 것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우리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관점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객관을 요구할 때조차, 그건 사실 내 해석을 정당화해 줄 동의를 구하는 것에 가깝다.
객관은 그래서, 자주 ‘무기화’된다.
더 많은 사람을 내 해석 편에 세우기 위한 수사처럼.


나는 이 생각이, 집안일을 두고 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과도 닮아 있다고 느낀다.
나는 주로 집에서 요리와 설거지, 세탁과 빨래 개기 등을 맡는다.
매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스스로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절반 이상은 내가 하고 있어.’

그런데 가만 보면, 내가 하는 일만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화장실 청소나 옷장 정리처럼 매일 하진 않지만,

한번 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들을 맡는다.
그런 일은 내가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힘들고 귀찮고 미루고 싶은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몫을 중심으로 계산한다.
하루에 내가 한 일은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상대가 한 일은 어렴풋하거나,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둘 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더 했다’고 말한다.
사실은 서로 다른 관점을 각자 옳다고 주장하는 것뿐인데,
우리는 그걸 ‘객관적 판단’이라 포장해버린다.


니체는 또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권력의 문제다.”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한 해석이 곧 진실처럼 굳어질 뿐이다.
객관적 판단이란 말도, 결국은 내 해석에 힘을 실어줄 동맹을 찾는 행위다.
사람들이 온라인에 사연을 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는 아닐까.
‘내가 이상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
그게 때론 ‘진실’을 향한 열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객관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 말도, 그저 해석일 뿐임을 인정하는 일.
그리고 상대의 해석도 한 번쯤 그대로 들어보는 일.
듣고도 반박하지 않는 연습.
내 입장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불편함을 견디는 일.

나는 지금도 아내와 다투다 보면,
내가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그런 생각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내가 아무리 이겨도, 그걸로 살아주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유부남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도는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져주는 게 편하다.”


물론 그 말엔 자존심과 객관성에 대한 미련이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객관이라는 허상을 내려놓고, 관계라는 현실을 택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객관이라는착각 #니체의해석 #집안일분담

#관계철학 #기브앤테이크 #브런치글쓰기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 #일상에세이 #공감에세이

keyword
이전 04화불안의 반대는 평온이 아니라 몰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