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모로 사랑을 고른다는 착각
사람은 누구나 외모에 끌린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도 그렇고, 아마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어떤 얼굴, 말투, 분위기에 눈이 가고,
그 호감이 관계의 시작이 되는 건 충분히 이해되는 감정이다.
문제는 그 감정을 기준으로 바꿔버릴 때 생긴다.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조건을 세워놓고 필터링하듯 접근하는 태도.
그건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키 175 이상, 마른 체형은 싫고, 무쌍이면 좋겠고…”
이상형을 말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나는 종종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게 된다.
어떤 조건 하나로 누군가를 만날 가능성의 절반이 사라지고,
두 개를 덧붙이면 3분의 2가 사라진다.
취향이라기엔 너무 체계적이고,
기준이라기엔 너무 좁다.
“그냥 내 취향일 뿐이야”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종종 취향과 기준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람을 고른다.
취향은 없어도 되는 것이고,
기준은 없으면 탈락시키는 것이다.
외모를 이유로 누군가를 걸러낸다는 건,
선택이 아니라 선별에 가깝다.
그리고 그 선별의 기준이 정말 내 것인지 돌아보면,
그마저도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다.
SNS, 유튜브,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평균값’이
우리를 조용히 길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노출되는 얼굴과 몸매, 영상 속 연애 콘텐츠,
'외모가 곧 매력'이라는 전제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자꾸 보다 보면 그 기준이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기준은 점점 당연한 취향처럼 느껴진다.
많이 본 얼굴, 익숙한 체형,
그런 이미지들이 내 취향인 줄 알고 자라온 건 아닐까.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하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사람을 조건으로 판단하고,
그 조건은 종종 겉모습의 조합으로 환원된다.
예쁘면 성격도 괜찮을 것 같고,
괜찮아 보이면 믿을 만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외모는 단지 호감의 출발점이 아니라,
성격과 인격까지 대리 설명해주는 장치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어울려 보이는 이미지를 고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보기 좋은 사람의 시대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내가 어떤 외모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애 시장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면,
과연 나는 “외모는 필터가 되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젓게 될 것이다.
그 기준은 언젠가 내게도 되돌아온다.
지금은 선택권을 가진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준에 닿지 못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조건을 지우지 못한다.
그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기만과 두려움이 만든 습관일 수 있다.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종종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반영한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당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사람은
사랑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반복한다.
외모가 문제라기보다,
그 외모에 담긴 감정이 조용히 변질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건 내가 편해서가 아니라, 지쳐서 그러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눈에 판단하고, 바로 결론을 내리는 방식.
그건 감정이 아니라 생활의 피로가 만든 선택 기술일지도 모른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한두 가지 외모 조건으로 누군가를 걸러낸 순간들 속에,
정말 잘 맞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말투 하나, 웃음 하나만으로도
애정이 자라날 수 있는 관계였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 가능성을 보기도 전에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가능하면 외모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그건 어떤 미덕이나 이상이 아니라,
좋은 인연을 좁히지 않기 위한 작은 자각이자 실천이다.
관계는 눈에 띄는 인상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함께 걷는 시간,
어긋났을 때도 놓지 않은 말투,
기다려준 마음과 서툰 이해 속에서 조금씩 자란다.
그런 장면은 조명보다 그림자에 가깝고,
어느 필터도 담아낼 수 없다.
나태주는 시에서 말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외모는 순간적인 인상이지만,
사랑은 시간을 견디는 시선이다.
우리는 가끔,
예쁜 사람을 만났을 때보다,
나를 예쁘게 대해준 사람을 잃었을 때 더 오래 후회한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보는 것’에서 ‘사는 것’으로,
이미지에서 관계로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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