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어떤 모습이나 태도로 바꾸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그 설명은 이해하기 쉽고, 교육이나 대인관계에서도 자주 쓰인다.
하지만 그런 설명으로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상대에게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어쩌면 인간은 ‘변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감각 자체를 원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정치적 발언들 때문이었다.
특정한 주제를 둘러싸고, 늘 비슷한 양식의 댓글이 달린다.
“○○○ 지지자는 상종도 하지 마라. 인간 수준이 아니다.”
“그걸 보고도 아직도 지지한다고? 진짜 병○이지.”
문장이 조악하고 표현이 거칠어도, 같은 계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말을 쏟아낸다.
반박이 달리고, 조롱이 붙고, 심지어 계정이 차단당해도 다시 나타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그저 누군가가 반응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듯하다.
그건 육아 중에 마주친 어떤 장면과도 닮아 있었다.
아이에게 “숟가락으로 이 치지 마”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잠시 뒤 아이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입에 넣는 척하다가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눈이 마주친 순간 아주 천천히 이를 ‘딱’ 하고 친다.
그 표정에는 장난기와 망설임이 엇섞여 있었다.
마치 “봐, 내가 널 움직이게 했어”라고 말하듯이.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은 억압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결과를 만들든 말든, 내가 너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그 사실이 곧 권력이다.
니체 역시 인간은 쾌락보다 자기 힘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더 깊이 원한다고 했다.
이 두 말은 서로 닮아 있다.
누군가가 내 말이나 행동에 반응할 때, 나는 세상에 흔적을 남긴 존재가 된다.
그 감각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반복해서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런 시선으로 교육을 다시 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우리는 종종 아이가 ‘혼날 게 뻔한데도 왜 그 행동을 했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주의 부족’이나 ‘훈육 실패’라는 익숙한 대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행동의 목적이 변화나 보상, 심지어 반항이 아니라
단지 영향력을 행사해보려는 시도였다면?
그렇다면 벌을 통해 결과를 가르치는 방식이 항상 바라는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행동이 더 강화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단순히 ‘제대로 혼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이 안의 작용 욕망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켜주는 일이다.
칭찬이든 놀이든, 상호작용이든,
아이에게 ‘네가 세상에 닿고 있다’는 감각을 건강하게 느낄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
교육은 단지 행동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작용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해하고,
그것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조율하는 일이다.
아이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다.
자신이 세상에 닿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그 작은 영향력을 어떻게 받아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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