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확신이 들면 하려고.”
결혼도, 출산도, 어떤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든
우리는 마치 ‘확신이 먼저 와야 선택할 수 있다’는 듯 기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확신이란 건 사실, 선택의 결과에 더 가깝다.
선택하고, 살아보고, 돌아봤을 때—
그제야 비로소 ‘옳았구나’라고 느끼는 감정.
그러니까 확신은 조건이 아니라, 나중에 따라오는 감정이다.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함께 살아가는 감정, 매일을 감당하는 마음,
그건 계산이나 예측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확신은 그런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모양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유도 알고 있고, 필요성도 느끼지만
막상 결정을 앞두면 자꾸 망설이게 된다.
그건 선택이 주는 변화의 무게 때문이다.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책임이 생기고,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 말했다.
갈 수 있는 방향이 많기에 우리는 어지럽다.
어떤 것도 강제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무엇도 고르지 못한다.
그 불안은 나약함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더 냉정한 말을 남겼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미루기로 한 사람은
‘지금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셈이다.
누군가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시간이 흐른다면,
그건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삶은 우리 손에서 결정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혹은 고민을 하며 미루든,
우리는 늘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중이다.
그런데 현실의 선택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망설인다.
조건은 이해되지만,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다.
우리를 가로막는 건 정보 부족이 아니라,
감정과 책임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이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든다.
결혼을 한 사람이나 부모가 된 사람들은 대체로 힘든 이야기부터 꺼낸다.
좋은 점도 많지만, 그걸 말하면 괜히 팔불출처럼 보일까 조심스럽고,
실제로도 힘든 일이 더 먼저 떠오르니 그 말부터 하게 된다.
SNS나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출산은 흔히 ‘돈이 든다’, ‘자유를 잃는다’, ‘삶이 힘들어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된다.
반대로 그 안에서 얻게 되는 감정들은 대부분 정서적인 것이고,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설득되기 어려운 종류의 경험들이다.
아이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의 감정,
함께 사는 사람과 싸우고도 다시 웃게 되는 저릿한 순간들—
그건 수치나 조건표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보는 많아졌지만, 확신은 더 줄어든다.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이 알아서 망설이는 중이다.
결국 선택이 어려운 건
감정의 낯설음과 책임의 무게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사랑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선택이 두려운 거였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껴안고 나아갔을 때에만
확신은 조용히 따라온다.
사랑은, 그 두려움 위에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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