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그 조용한 기쁨

by 미냉

중학생 시절,

다른 학원들은 몰래 빠져도 서예원은 꼬박꼬박 갔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처럼 조용하기만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은은한 먹 향기 속에서 화선지를 펴고 붓을 들면

그곳은 조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주로 궁서체를 썼다.
뾰족하게 시작해서 한 번 틀고,
다시 직선으로 주욱 내려가다가 눌러 삐쳐내는 그 과정.
한 글자를 완성하는 데 온 신경을 쓰다 보면
한 시간이 금세 흘러 있었다.
누가 더 잘 썼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자에 집중하는 그 감각,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그것이 몰입의 순간이었다.

어떤 결과나 평가 없이
그 행위 그 자체에 빠져드는 시간.
생각해보면 학교 수업 시간에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기술 가정 시간에 목공을 하거나
요리를 배우던 수업도 비슷한 감각을 남겼다.
손과 눈이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은
작지만 확실한 즐거움이었다.

몰입은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준다.
그 순간만큼은 결과도 타인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나를 다 쓰고 있느냐다.

하지만 그런 몰입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구조들이
그 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몰입보다 결과를 먼저 의식하게 됐다.
수업 시간에 무엇이 재미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험이 지나가고 성적표가 돌아오면
남는 건 숫자와 등수뿐이었다.

뜻밖에도,
몰입은 교사로 임용된 후 시험 기간의 단순한 업무 속에서 다시 찾아왔다.
OMR 카드를 세고, 이름표를 붙이고, 봉투를 정리하는 일.
단조롭고 반복적인 작업인데도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됐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결과를 따질 필요도 없어서
짧은 시간이지만
몸과 마음이 한 방향으로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몰입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한 가지에 나를 다 써보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버틸 힘이 된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단순한 작업에서도 예전처럼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스마트폰일 것이다.

예전 같으면 삼십 분은 거뜬히 집중했을 일이
이제는 10분도 채 가지 못해 끊긴다.
알림 하나에 손이 가고,
별 의미 없는 화면을 훑다 보면
방금 전까지 유지되던 흐름은 금세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스마트폰은 단지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을 넘어서
몰입이라는 감각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
뭔가에 깊이 빠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점점 잊게 만든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삶은 점점 ‘몰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가받는 방식’으로 변해간다.

이제는 어디에 취업했는가,
직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
얼마나 돈을 모았는가,
누구와 결혼했고, 아이는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가
그런 질문들이 사람을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몰입은 사라지고,
삶은 결과를 증명하는 프로젝트처럼 변한다.

픽사의 영화 <소울>에서
조는 평생 꿈꾸던 무대에 선다.
연주가 끝난 뒤 그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래서... 이제 뭘 하죠?”

도달하고 나면 모든 게 완성될 줄 알았지만,
막상 거기 도착한 순간
허무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경험.
아마 어떤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행위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고 말했다.
꼭 결과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것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말.

나는 그 의미를
붓글씨를 쓰던 교실에서,
손끝으로 나무를 다듬던 수업 시간에서,
OMR 봉투를 채우던 작업대 앞에서
분명히 느꼈다.

그 감각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지금도 나는 그 감각을 믿고 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다 써서 살아가는 일.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하루일지도 모른다.


#집중력회복 #브런치에세이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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