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감정을 따라 조립된다

by 미냉

아침에 눈을 뜬다.
눈꺼풀이 무겁고, 몸이 침대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제보다 조금 더 피곤한 아침이다.

그런 날이면 머릿속이 아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5분만 더 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밥말고 그냥 계란하나, 머리는 대충감고 트리트먼트는 생략,

전기면도기로 쓱삭하고, 어제 입던 옷에서 상의만 바꾸자.
출근길엔 살짝만 속도를 내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10분은 벌 수 있다.

이 모든 생각은 어느새 논리처럼 정돈되어 있다.

마치 내가 하루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모든 구상은 피곤하다, 더 자고 싶다라는 감정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생각은 그 감정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말했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며, 그것이 시켜야만 움직인다.
Reason is, and ought only to be the slave of the passions.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땐 고개가 갸웃했다.
우리는 보통, 감정을 이성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배운다.
감정보다 이성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에겐, 이 말이 도발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흄은 그 모든 이성이라는 것이 실은 감정이 지시한 대로만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좀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 자신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들을 잘 만들어낸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으니까.”
“다음에 더 집중할 수 있을 때하면 결과가 좋겠지.”
이런 말들은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게다가 내가 만들어낸 논리인 만큼, 나는 그 말을 쉽게 믿는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 말들은 이미 감정이 결정을 내린 뒤에 따라붙은 것일 수도 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먼저 생기고,
그 마음에 합당한 논리를 나중에 끌어온 건 아닐까?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는
이런 감정과 판단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 뇌 손상 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능이 정상이었고, 분석 능력도 문제없었다.
그런데 점심 메뉴 하나를 고르지 못했다.

샌드위치와 파스타를 앞에 두고,
가격도 비슷하고, 재료도 알고 있고, 모든 정보는 갖추고 있었는데
‘뭘 더 먹고 싶은지’를 모르는 상태였다.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결정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내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자주,
논리적으로 판단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은 감정이 먼저 움직였고,
이성은 그 감정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이게 늘 그런 식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경우가 제법 많고,
그럴 땐 내 판단을 구성하고 있는 감정의 실체를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하기 싫은 이유’는 어쩌면 감정이 만들어낸 것이다.
논리가 아니라, 기분이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종종 몸의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몸의 컨디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잠을 충분히 자고,
가벼운 운동을 하고,
신선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
이건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다.

내 감정의 기초가 되는 환경을 다듬는 일이고,
그 감정이 다시 내 판단과 행동을 끌고 간다는 걸 생각하면,
결국 몸을 돌보는 일은 내 삶의 방향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저속노화’라는 개념도
나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한다.
그냥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아니라,
감정과 생각이 맑을 수 있는 시간대를 길게 확보하는 삶.

그건 판단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는 삶이기도 하다.


드라마 『미생』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니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니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그때는 그냥 맞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내가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기준처럼 느껴진다.

몸이 무너지면 감정이 흐트러지고,
감정이 흐트러지면 판단이 약해지고,
판단이 약해지면
나는 나 자신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나는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 5분을 더 잘 수 있는 논리를 생각해낼 것이다.

그런데 그 논리를 믿기 전에
그 논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먼저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게 이성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성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지켜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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