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둔감함은 삶을 둥글게 만들고
예민함은 삶을 선명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대체로 무딘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누가 조금 날 선 말을 해도 금방 잊고
기분이 나빠져도 오래 붙들지 않는다.
사소한 불편을 흘려보내는 편이다.
내가 무뎌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대체로 그런 때다.
불편한 감정을 오래 품지 않아도 된다는 건
관계를 망치지 않고 지나가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고,
나 자신을 덜 괴롭게 만드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언짢은 기분을 곧잘 잊고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은근히 도움이 되는 태도 같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예를 들면 음식을 먹을 때가 그렇다.
싫어하는 종류가 있는건 아닌데
맛이 없다고 생각되면 자연스레 평소보다 적게 먹는다.
직장 동료 중에 웬만한 음식은 다 잘먹는 분을 본 적이 있는데
간이 약해도, 조미료 맛이 강해도, 약간 희한한 조합으로 나와도
“맛있네요” 하며 웃었다.
그 모습에는 어떤 낙관이나 평온함 같은 게 담겨 있다.
많이 따지지도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으며
그냥 지금 있는 것을 잘 받아들이는 태도.
나는 그게 한편으론 부러웠다.
감각에 예민하지 않다는 건
삶의 굴곡을 조금 덜 타며 지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실제로 같이 일을 하면서 지켜보니
일을 할 때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무던하게 잘 헤쳐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또 이렇게 생각을 바꿔 보기도 한다.
작은 차이에 쉽게 반응하는 것이 예민함이라면
그 감각이 꼭 불편함으로만 작동하는 건 아닐 것이라고.
입안에서 미묘하게 올라오는 단맛
작은 식감의 차이
익숙한 음식에 예상 밖의 향이 더해질 때의 그 낯선 조화.
그런 감각은 예민함이 없으면 놓치기 쉽다.
특별한 메뉴보다
익숙한 음식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때
나는 더 깊은 기쁨을 느낀다.
된장찌개에 넣은 버섯이 달라졌거나,
볶음밥에 생강기름이 살짝 감돌거나—
그 작은 변화 하나가 음식 전체의 인상을 바꿔놓는다.
그럴 땐 혼자 감탄하면서 먹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게 된다.
예민함이 꼭 피로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건 작은 차이를 기쁨으로 바꾸는 감각이기도 하니까.
물론 피로하게 작용하는 순간도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결재를 받거나
누군가의 피드백을 기다릴 때
말보다 분위기가 먼저 감지될 때가 있다.
서류를 넘기는 손끝의 망설임
미묘한 표정이나 시선의 흐름 같은 아주 작은 신호들.
말로 하지 않아도 불편함은 상대에게 전달된다.
그러면 ‘먼저 수정하겠다고 말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긴다.
그러면 상대는 부담을 덜 수 있겠지만
매번 먼저 나서는 쪽은 지치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면 잠시 기다려보면 어떨까?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정말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해주겠지
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일
그런 태도 하나만으로도
항상 먼저 감지하고 먼저 반응하느라 지쳐 있던 부담을
조금은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예전엔 예민함을 타고난 기질이라고 여겼다.
나는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태어났구나
그렇게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요즘은 예민함을 기질이 아니라 태도로 바라보고 싶다.
모든 것에 민감하지 않고
기쁨이 될 만한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건 나를 괴롭히는 성격이 아니라
삶의 감도를 조율하는 기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마치 감각의 볼륨을 조절하듯이.
조금 낮추기도 하고,
조금 높이기도 하면서
편안함과 선명함 사이를 오갈 수 있다면
나는 삶을 마치 날씨처럼 느끼고 조율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흐릿하게 둔감한 채로 머무는 게 필요하고
또 어떤 날은 맑고 예민하게 빛을 받아들이는 게 어울린다.
언제나 같은 감도로 살아간다면
오히려 그 안에서 놓치게 되는 감정과 풍경이 있다.
중요한 건 그 변화에 따라 내 감각의 볼륨을 조금씩 조절해보는 일.
요즘 내가 배우는 건
감정이 일렁일 때마다 흔들리기보다
머물 만한 곳에만 살짝 발을 담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