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과 날씨에 관한 감각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하늘이 맑고 습기도 없으며 바람은 적당히 선선하다.
그냥 그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날.
별다른 일은 없는데도 몸이 가볍고
왠지 걷고 싶고 나가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문득 생각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아무것도 바뀐 게 없고 별일도 없는데
그날의 햇살과 공기가 마음을 한 톤 밝게 만든다.
그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날은 생각도 한결 가벼워진다.
작은 고민들, 미뤄둔 질문들,
흘려보냈던 감정들이 조용히 제 목소리를 되찾는다.
생각이 산만한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또렷하게 하나씩 자리를 잡고 정리되는 느낌.
무겁지 않고 탁하지 않고
조용하고 오래 머무는 생각.
햇살 좋은 날엔 그런 생각이 피어난다.
아이들과 함께 자주 가는 해변 근처의 카페가 있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바다가 가까워지는 길목부터 풍경이 달라진다.
차창 너머로 햇살이 부서지고
바람이 달라지고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아이들과 바닷가를 함께 걷고
바람을 맞고
지나가는 강아지와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카페에 들어가 작은 간식을 나눠 먹는 것이 가족의 일상이다.
나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아이들과 바다를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붙들고 있던 생각이
어느새 제자리를 벗어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해결된 것도 아닌데
더 이상 해결하려 하지 않게 된다.
지금 이대로 두어도 괜찮다는 기분.
햇살 좋은 날의 생각은 그런 식으로 나를 바꿔놓는다.
결심보다는 수긍. 논리보다는 느낌. 설명보다는 기다림.
그런 날엔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된다.
조급하지 않고
조금 늦어도 괜찮고
당장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된다.
마음이 기울고 기분이 풀어진다.
나는 내 안의 긴장을 천천히 풀어놓는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우리는 세계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한다”고 말했다.
생각은 뇌에서가 아니라
감각에서 자란다.
햇살과 바람과 바다의 냄새.
빛의 명암과 따뜻한 기류.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유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맑은 날의 생각은
흐린 날의 사색과는 조금 다르다.
더 명확하거나 깊다기보다는
덜 닫히고 덜 경직된 생각.
그러나 오래 남는 생각.
지금은 설명되지 않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날의 생각이 꼭 필요한 전환이었음을 알게 되는 날.
지금은 아무 일도 아닌 듯 지나가더라도
마음 어딘가에서 방향을 틀게 해주는 하루.
햇살 좋은 날엔 그런 생각이 생긴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기분이 먼저 움직이고
그 기분이 마음을 열어젖히고
그 열린 틈 사이로 긍정이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햇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게 하고
내일이 어쩐지 괜찮을 거라는 예감을 품게 한다.
그런 흐름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아침의 맑은 햇살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건 단지 날씨 때문이 아니라,
그날의 감각이 나를 살짝 바꿔놓을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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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