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대가는 생각보다 비싸다

by 미냉

우리는 요즘 점점 더 많은 장치와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도로엔 신호등이, 거리엔 CCTV가, 회의 자리엔 녹음 버튼이 켜져 있다. 그 모든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마 그게 더 안전하고 객관적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왜 이렇게 많은 장치들이 필요해졌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믿지 않게 된 걸까?


시스템이 비집고 들어오기 전, 그곳에는 사람의 시선과 스스로 작동하는 원칙들이 있었다. 누군가 규칙을 어기면 그것을 지켜보는 시선이 억제력처럼 작동했다. 굳이 제도가 나서지 않아도 질서는 유지되었다. 그땐, 신뢰라는 것이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작동하는 구조였는지도 모른다.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타국에서 운전을 하게 된 나에게 눈에 띈 것은 스탑사인이라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정지신호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다. 운전자들은 원형의 빨간 표지판을 봐도 그냥 주의를 기울여라는 정도의 의미로만 받아 들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 정지신호를 매우 철저하게 지킨다. 신호등을 설치하기에 애매한 작은 사거리에는 어김없이 바닥에 큼직하게 ‘STOP’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그 옆에는 철봉 끝에 빨간 원판 하나가 달린, 우리 모두가 아는 표지판이 있다. 단순하다. 그런데도 모두가 정확히 그 지점에서 멈춘다.


직진, 좌회전, 우회전 누가 우선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속도를 줄일까 말까 역시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그 글씨 앞에서 속도를 0으로 만들었다가 가면 된다. 먼저 멈춘 차가 먼저 가면 되니 복잡한 판단도 필요 없다. 그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이 지켜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라고 해도 이 넓은 땅에 신호등을 다 설치하긴 부담스러운 걸까?”


하지만 계속 겪어보니 더 많은 장점들이 보였고 돈을 아낀다는 이유만으로 신호등 대신 표지판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의 신뢰를 전제로 작동하는 구조라는 점이었다. 운전자들은 서로가 예상하는 그 타이밍에 멈추었다가 출발하며 모두가 알 수 있는 순서대로 사거리를 지난다. 때로 운전자끼리 눈이 마주치면 여유있게 미국식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한데 우리 사회는 ‘혹시 안 멈추면 어쩌지’라는 전제를 기본값으로 삼는다. 그래서 신호등이 필요하고, 그 신호등마저 지키지 않을까봐 그 옆에 단속카메라가 붙는다. 스스로 멈출 거라는 믿음보다는 멈추게 만들 장치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장치에는 설계와 설치, 유지 비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신뢰가 사라진 데 대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지하철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에 관한 문제는 신뢰에 대한 또 다른 예시다. 임산부가 아닌데 그 자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진다는 뉴스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대책은 역시 감시시스템이었다. “배지에 인증칩을 넣자.”, “앱으로 등록하면 불이 들어오게 하자.”, “CCTV로 단속하고, 과태료를 물리자.” 무단으로 임산부석에 앉는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해 세금을 쓴다는 발상은 얼마나 정의로운 것일까? 그런 말이 너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신뢰할 수 있다’는 감정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사회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사회적 신뢰를 감시 시스템으로 대체하면, 우리는 정말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CCTV가 있다고 해서 그 거리가 더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신호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호를 위반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감시가 없어도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훨씬 더 강하게 우리의 신뢰를 회복시킨다고 믿는다. 누군가 보고 있어서가 아니라, 누가 보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우리가 진짜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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