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 완전성의 압박과 숨 쉴 틈에 대하여

by 미냉

아이를 키우면서 이상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스스로에겐 그다지 완벽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육아만큼은 어딘가 철저하고, 빈틈없고, 완전해야 한다는
어렴풋한 강박 같은 것 말이다.

내 물건은 흠이 있어도 그냥 쓴다.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그러려니 넘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와 관련된 일 앞에선
작은 흠집에도 괜히 마음이 쓰인다.

특히 이유식을 만들거나 육아용품을 고를 때,
그 감정은 더 선명해진다.

성분을 비교하고, BPA 프리 여부를 확인하고,
전자레인지에 몇 초 돌릴지까지 망설인다.
설탕, 나트륨, 첨가물,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처음엔 조심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기준은 나 자신을 시험하는 잣대가 되어 있었다.


요즘은 유튜브나 SNS에서 육아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보들이 '많음'의 문제를 넘어,
‘높은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영상 속 집은 언제나 잘 정돈돼 있고
아이의 식판은 색깔 고운 이유식으로 예쁘게 채워져 있다.
영양과 맛을 고려한 식단이 매일 바뀌고

아이를 위한 장난감과 침구는 ‘헉’ 소리가 나올만한 가격대의 제품들이다.

그걸 보며 ‘참고해야지’ 하기보다,
‘나는 왜 저렇게 해주지 못할까’라는 자책이 드는 날이 있다.
그건 아마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육아는 본질적으로 완전성을 요구받는 영역이다.
그 대상이 너무 작고 연약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부모는 더 완벽해야만 한다는 윤리적 압박에 시달린다.

아이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제 이유식 간이 너무 강했던 건 아닐까?’
‘날씨가 안좋은데 괜히 외출을 했나?’
하며 모든 원인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모든 부담과 조심성을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불안의 다른 이름이 되는 순간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가장 혹독한 기준을 들이대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매 끼니를 정성껏 준비하고
아이의 신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육아용품 하나도 흠 없게 고르려 애썼지만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다.

그 완전성을 유지하다가는 내가 먼저 병이 생길 것 같다.

결국 하나씩 내려놓는다.
어느 날은 간을 조금 하기도 하고,
냉동 이유식에 손을 뻗기도 한다.
육아템은 SNS에서 추천하는 것말고 당근에서 되는대로 찾아보기도 하고
계획에서 조금 흐트러진 일정도 그냥 넘긴다.

하지만 그건 실패가 아니다.
적정선을 찾는 과정이다.
모든 부모는 그렇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윤곽을 발견해간다.

그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제는 그 과정을 실패처럼 느끼게 만드는 외부의 시선이다.

수없이 노출되는 정보
‘이게 진짜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고강도의 루틴,
완벽에 가까운 화면 속 육아 장면들.

이전 같으면
자신의 여건 안에서 조용히 노력했을 일들이,
이제는 '높은 기준에서 미끄러진 이야기'로 바뀌고 있다.

내려놓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감정이
육아를 더 버겁게 만드는 진짜 무게다.

언젠가 육아 콘텐츠를 올리던 한 연예인이
아이를 안는 자세 하나로 대중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안전을 위한 조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의 말들은 조언이 아니라 단죄에 가까웠다.

‘아이를 그렇게 안으면 안 된다’는 말들은
아이를 향한 걱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를 향한 압박이었다.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요즘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마음보다
불완전한 하루를 견디는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있다.

삐걱거리는 루틴, 자잘한 실패들과 그에 대한 후회들 속에서
아이와 함께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예전엔 어른들이 그랬다.
흙도 좀 먹어도 된다고.
지금 기준에선 무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안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있었다.

우리는 그 감각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오늘도 어제의 부족함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더 이상 ‘완벽한 육아’를 꿈꾸진 않는다.

그 대신
숨 쉴 틈이 있는 육아
틀려도 다시 해보는 육아를
조금씩 실천해보려 한다.

실패도 불완전도 아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육아철학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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