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음의 용기

by 미냉

어떤 날은 아이가 울며 블럭을 들고 온다.

끼워지지 않는다며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부품이 분리되었다며 화를 내면서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나는 안다.

그걸 대신 끼워주면 아이는 곧 조용해진다.

하지만 나는 또 안다.

그 조용함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도와준 바로 그 자리에서 아이는 다시 나를 찾을 것이다.

사실 처음엔 의도적으로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힘들고 귀찮아서 외면했던 날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어제는 울며 들고 오던 블럭을 오늘은 혼자서 맞췄다.

당연히 못할 거라 생각했던 동작을 어느 날 문득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성장은 도와주는 데 있지 않고 견디게 해주는 데 있다는 것을.


이런 일은 교실에서도 일어난다.

어느 해 친했던 남학생들끼리 몸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

말로는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서로를 외면했고 학폭 이야기도 나왔다.

그때 나는 선뜻 개입하지 못했다.

잘 해결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게 정말 큰일인지 반신반의하며 판단을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개별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친구들은 다시 함께 농구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 주변의 친구들이 그 어색함을 못 견디고 강제로 화해를 시켰다고 했다.

결국 내가 뭔가를 하지 않은 틈에 학생들 사이에서 일이 해결되었다.

나는 그 일을 통해 또 하나를 배웠다.

개입을 멈추고, 주도권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일이 해결되기도 한다는 것을.


수업 시간에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갈등이 있다.

교사는 항상 말하고 싶은 욕망과 싸운다.

설명해야 안심이 되고 가르쳐야 수업을 잘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배움은 때로 교사의 침묵 속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 그 고요함을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누군가는 견디게 해준다.

그런데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침묵을 견디게 해주는 건 준비된 교사만의 특권이다.

수업의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하고 학생과 신뢰가 쌓여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교사 자신이 그 침묵을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

이건 의도를 품은 침묵. 전략으로서의 간격 두기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한 소극성이 아니다.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이다.

그건 대범함을 요구한다.

지금 당장은 손을 뻗는 게 더 나아 보일지라도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아이가 스스로 자라나는 걸 기다리는 일.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자리를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움의미학 #교사의기다림 #하지않음의지혜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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