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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 Oct 06. 2021

매너를 글로만 배우면 일어나는 일

아직도 매너가 내 것이 되지 않는 이유

매너를 글로 배우면 안 되는 이유


얼마 전 특급호텔에서 테이블 매너 강의를 의뢰해왔다.

담당자는 테이블 매너 전문가를 찾기는 것이 쉽지 않아서 꽤나 고생을 하는 듯했다.

심지어 영어로 진행하는 테이블 매너 강의라니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강의를 선뜻 수락하지 못했다.

다른 강의도 그렇지만 특히 매너 강의는 정말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한 마디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

 ‘매너 강의에 나는 좀 많이 진심인 편'


영어권에서도 공부를 했으니 영어로 소통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아주 포멀한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특히 매너 강의라면 더욱 그렇다.


매너, 특히 테이블 매너는 글이나 영상으로 배우는 것이 참 어렵다.

매너의 기본적인 룰이나 지식을 아는 것은 실제 매너와 정말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너는 일정한 법칙을 기반으로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러기에 매너에 관한 지식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도 좋은 매너를 가지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매너를 글로 배우면, 연애를 글로 배우는 것과 매우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매너를 모르고도 잘 살아왔다면 비상경보


매너를 모르고도 지금까지 특별히 불편함 없이 잘 살아왔다면 빠른 시간에 셀프 테스트를 권한다.

사실은 아주 심각한 상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꽤나 괴로웠을지 모를 일이고,

정작 본인은 민폐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편함도, 부끄러움도 없었을 테니까..


가끔.. 매너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는, 하지만 아주 근사한 매너가 몸에 배어 있는 분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분들은 '매너'라는 단어나 법칙 같은 한정된 표현으로 규정되지 않았을 뿐

삶의 태도 자체에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말투에, 표정에 이미 배어있고,

항상 더 좋은 매너의 표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이었다.

이런 경우 비록 세련된 매너가 아닐지는 몰라도 너무나 따듯하고 감동을 주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세상 훌륭한 매너를 가진 분들일수록 매너를 배우는 일에 관심이 많다.



당장은 내 것이 될 수 없는 비극


아주 훌륭한 매너를 가진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 본 경험이 있다면

나도 저런 모습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가지게 된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순간의 경험일지라도 그 여운은 중독 이상의 임팩트가 있다.

훌륭한 매너에서 느껴지는 그 특별함이란

인간의 언어로는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멋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매너를 알고 싶어 한다.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양한 매너의 여러 룰들을 잘 알게 되더라도 그 멋진 매너는 여전히 내 것이 아니다.

매너의 본질이 앎이 아닌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매너의 룰들을 알고 거기에 내 마음이 더 해지면

멋진 매너들이 당장 내 것이 되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내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같지 않고,

내가 아는 내 마음과 실제 내 마음은 다를 수 있으며,

오랜 시간 몸에 배어있는 습관들은 나의 생각이나 마음보다 훨씬 더 앞설 때가 많다.

그래서 마음으로 받아들인 앎을 정성 들여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쯤 되면,  강렬하게 소망하던 그 매너 앞에서..

'뭐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지' 하는 못된 싹이 슬며시 올라온다.

혹시 그런 순간이 온다면 조바심과 자만심을 내려놓고 그냥 조금만 더 가보기를 권한다.

근사한 매너는 결코 짧은 시간 안에 내 것이 되어주진 않지만

그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저 ‘매너’라는 또 하나의 마음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종종 반짝반짝 빛나는 기쁨의 순간을 선물처럼 받기도 한다.



근사한 매너가 내 것이 된 그날, 꼭 기억할 것


좋은 매너의 기본과 기초를  마음으로 알아가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본능과 애착 습관들을 거스르며 또 하나의 마음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

꽤나 근사한 매너가 나의 몸과 마음에 배어들고 있다면

그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매알못(매너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제대로 만나는 순간이 온다는 것.

여기가 마지막 관문이다.

그때가 빨리 올 수도 있고, 한 번이 아닐 수도 있으며, 아주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 매알못의 만행을 마주하는 그날,

눈살을 찌푸리거나, 열폭을 하거나, 지적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단지 그 상황이 특별해서도, 순간 당황해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런 반응을 하고 있는 내가 바로 매너를 글로 배운 사람의 한계에 머물러있다는 반증이다.

매너의 본질,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도대체 어디가 버리고 매너의 룰만 남아있는 건지

자기 객관화가 다시 필요한 시간이다.


혹시 매알못의 만행을 마주하고서도 내 마음과 행동의 평정을 지켰다면

진짜 진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확인해보자.

내 평정의 근원이 상대를 향한 우월감은 아니었는지..

내가 짓고 있는 미소 뒤에 상대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매너를 정말 진짜 한참 잘 못 배운 것이다.


누구나 매너라고는 1도 모르고, 천방지축 돌아다니는 뽀시래기 시절을 거친다.

누구에게도 예외란 없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민폐인 줄 몰랐을 뿐.. 그 시절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매너'라는 가치를 알게 되었고,

그 근사한 매너가 내 것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여전히 크고 작은 실수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본 투 비 인척 내게 배어있는 근사한 매너는

누군가의 너그러운 이해와 숱한 배려가 있었기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천천히 곱씹어 보면 나의 결초보은이 필요한 분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다시 내 앞에서 민폐를 끼치고 있는 매알못을 바라보자.

그 사람에게서 나의 뽀시래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면

드디어 너무나 근사한 매너가 진짜 내 것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이다.



눈 앞에 있는 매알못 따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당신.
너무나 근사한 매너를 가지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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