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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 Oct 24. 2021

매너를 모를 땐 이렇게 하세요

진짜 고수의 선택

빠르고 현명한 선택만이 살 길


아프다고 조퇴하고 친구랑 맛집 갔는데 

연차 쓰신 과장님과 입구에서 만났을 때,

단골 카페에서 남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현남친이 전남친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빠르고 현명한 선택이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위기의 순간들이 있겠지만

이처럼 찰나의 순간에 대처를 해야 하는 위기 상황을 만나면

우선 빠르게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이실직고하여 정상참작을 받거나

완전 범죄를 통한 무죄 선고를 받는 것.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눈치 챙겨


'테이블 매너'라고는 1도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가게 된 식사자리에서 

격식을 갖춘 테이블 매너로 식사를 해야 한다면..

이때도 완전 범죄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사전 준비 없이 실전에 바로 투입된 상태에서

완전범죄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숨은 고수를 찾는 것'이다.

같이 식사하는 멤버 중에서 테이블 매너를 가장 잘 알 것 같은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을 그대로 벤치마킹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와 적절한 타이밍이다.

타겟팅이 된 그분에게 시선을 지나치게 고정해서는 안되고

반박자 느린 타이밍이 예의인 척, 여유인 듯 보일 수 있도록 

적절한 간격 조절 역시 꼭 필요하다.

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방법을 통해 가히 완전범죄를 꿈꿔볼 만하다. 


이론상으로는 이 방법이 꽤 설득력 있는 아주 솔깃한 제안이지만 

실제 상황에서 이 방법으로 완전범죄의 해피엔딩을 완성할 확률은 매우 낮다.

왜냐하면 적절한 타겟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불 킥을 부르는 대참사


10여 년 전 LA에서 차와 식품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식품 관련 세미나였는데

우리 같은 외식 산업의 전문가들과 함께

마케팅이나 비즈니스 전문가들도 다수 참여했던 경우였다.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연구들을 영어로 솰라솰라 설명하는데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장시간 집중하는 것은 진짜 힘든 일이었다.

힘들게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그 호텔의 다른 연회장으로 이동했는데,

외식업계의 세미나인만큼 테이블 세팅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시차 적응 때문인지, 화려한 테이블 세팅에 시선을 뺏긴 탓인지

내가 잠시 멍한 눈빛으로 테이블을 보고 있는 순간,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잔다르크 스타일의 여성 사업가 한 분이

"어머~ 이거 봐요. 화이트 초콜릿이 너무 예쁘네"라고 하시며

테이블 가운데 놓여있는 커다란 알사탕 같은 음식을 망설임 없이 집었고,

그것은 순식간에 그분의 입안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용기 있는 그 행동을 보고 있던 두 세명이 빠르게 벤치마킹하셨고,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문채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뒤엔 모든 상황은 이미 종료된 상태였다.


그것은 화이트 초콜릿이 아니라 버터였다.

식전 빵이 나오면 함께 먹을 수 있는 버터를 호텔에서 미리 세팅해둔 것이다.

뽀얗고 동그란 버터에 로고까지 예쁘게 찍어 두어서 정말 초콜릿처럼 보이기도 했다.


상상을 해보자.

빈 속에 버터 한 숟가락이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는..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은 식사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속이 안 좋다며

빨리 숙소로 가고 싶다고 하셨고,

서로의 민방함 때문인지 세미나 기간 동안 그분들과 더 이상 친해질 수 없었다.


이처럼 순간의 결정, 잘못된 벤치마킹은 

완전범죄는 고사하고, 두고두고 이불 킥을 부르는 대참사를 낳기도 한다.



자존감 높은 매알못

*매알못_매너를 알지 못하는 사람


격식 있는 식사자리에서 정말 다양한 케이스들을 경험한 선배로써

매알못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성공확률이 매우 낮은 완전범죄를 기대하지 말고

자존감 높은 매알못이 되라는 것이다.


식사 전에 함께 식사하는 분들께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매알못임을 알리면 된다.

"정말 멋진 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격식 있는 자리는 처음이라서요. 

혹시 실수가 있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세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많은 경우 자신의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 또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억지로 감추는 것보다 

당당하게 인정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사실 그것 만큼 속 편한 일도 없다.

기대치가 한껏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여간한 실수는 이해를 받을 수 있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훌륭한 매너가 있는 상대를 은근하게 칭찬할 수 있다면

전략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매너 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매알못임을 스스로 인정했으니까 긴장감이 한참 덜어진 상태로

숨은 고수를 찾아 센스 있게 벤치마킹하면 된다.

어쩌면 당신이 적응을 너무 잘해서

"이런 자리 처음이라더니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나의 숨은 고수가 되어 준 그분에게

"식사하는 내내 대표님의 매너를 벤치마킹했습니다.

너무 멋진 테이블 매너여서 꼭 닮고 싶습니다."라고 속마음을 전해보자.

숨은 고수의 마음에 깊은 인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짜 고수들의 매너 아닐까





위기라고 느껴질 만큼 당황스러운 식사 자리가 갑자기 생겼다면
나의 부족함을 담담하게 오픈하는
자존감 높은 매알못이 되어보자.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인생 최고의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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