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쇠약 근시안
“여보, 어떤 할머니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층 버튼 옆에 스티커만 계속 누르더라고.”
아내의 말에 기분이 묘해졌다.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아내가 말한 스티커란 층 번호가 표기된 큼지막한 스티커다. 아파트에서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을 돕기 위해 엘리베이터 층 버튼 옆에 나란히 붙여 놓았다. 모든 층을 다 붙인 건 아니고 5층 단위로, 즉 1층, 5층, 10층 이렇게 붙였다. 그러니까 5층 층 버튼 옆엔 ‘5’라고 시원하게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거다.
“정말? 그래서?”
“할머니에게 알려드렸지, 뭐. 그건 스티커라고. 아마 우리 아파트에 처음 오신 분인가 봐.”
“층 번호가 잘 보이라고 붙여 놓은 스티커가 오히려 헷갈리게 한 거네?”
아파트에서 층 번호 스티커를 붙였을 때 참 잘한 일이라고 여겼다. 배려의 손길이 느껴져 마음이 푸근했다. 스티커 숫자가 눈에 잘 띄어 특히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거의 안 타서 직접 본 적은 드물지만, 아내는 실제로 어르신들이 편리함을 느끼는 것을 종종 보았다.
나도, 아내도 누군가 스티커를 층 버튼 대신 누르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스티커 아이디어를 낸 이들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할머니는 정말 ‘예상 밖’의 상황을 보여주신 듯하다.
“그러게 말야. 난 처음에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근데 할머니가 ‘왜 이게 안 되지?’ 하시길래 그제야 알았다니까.”
아내가 진지한 얼굴로 던진 말에 우스운 느낌은 싹 사라졌다. 짠한 느낌만 가슴을 메웠다. 스티커를 누르면서 할머니가 당황했을 걸 상상하니 소리 없이 한숨이 나왔다. 어쩌면 더 많은 어르신들이 그런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단지 내가 못 보았을 뿐. 나아가 나도 나이가 더 들어 늙으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일 것만 같았다.
늙으면 어쩔 수 없이 몸은 약해진다. 몸이 약해지면 아무래도 행동은 움츠러든다. 가령 어르신들이 버스에서 대체로 앞자리에 앉는 이유는 경로석이 앞에 자리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뒷자리까지 쑥 들어가 앉기가 버거운 것도 주요 이유다. 다리를 다친 사람이 멀리 가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몸이 약해지거나 불편해지면 시야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가까운 곳부터 눈을 돌리고, 그곳에서 필요한 게 눈에 안 띄면 초조해하는 경향이 생긴다. 나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랬다. 늘 작은 탁자에 성경책과 안경을 두었던 외할머니는 가끔 안경이 안 보이면 다른 곳을 찾을 염을 못 내고 초조해했다. 그럴 때 안경은 보통 탁자 밑에서 나왔다.
정말 조심스럽게 ‘인간쇠약 근시안’이란 표현을 떠올렸다. 사람이 약해지면 가까운 곳만 보려 하고 먼 곳을 볼 마음을 먹지 못하는 것 같아 지은 표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스티커를 버튼인 줄 알고 눌렀던, 옆에 버튼을 눌러볼 생각을 못하고 초조해하기만 했던 그 할머니는 ‘인간쇠약 근시안’이 생긴 것 같다. 정말 안타깝지만.
세월이 흘러 눈이 어두워지는 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늙어서 몸의 눈이 어두워지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말이 나는 위로가 된다. 물론 마음의 눈이 저절로 밝아질 리는 없을 거다. 마음을 갈고닦고 인품을 기르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할 거다.
나는 늙었을 때 밝은 마음눈을 갖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련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아직 젊은 놈이 별소리 다한다고 혼낼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