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ZEX. 열쇠구멍의 파동

검은 어둠.

by 마루

1부 – 열쇠구멍의 파동

붉은빛 네온 간판이 어둠 속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ZEX.
촌스럽고도 낯선 그 철자.
지워진 듯한 시간 속에서, 오히려 강하게 살아 있는 이름이었다.

도심 외곽,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의 넓은 공터.
그 한복판에, 마치 잘못 배치된 조각처럼
8층짜리 무인 모텔 하나가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창은 모두 닫혀 있었고,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그것은 무인텔이라는 말처럼 ‘비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가득 품고 숨기고 있는 곳 같았다.

20250728_232849.png

한 남자가 그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든 채, 무표정하게.
하지만 가만히 보면,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안엔 기억과 망설임,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감정의 조각들이 묻혀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서, 시점은 천천히 건물을 따라 이동한다.
외벽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오던 시점은
모텔 입구, 한 호실의 문 앞 열쇠구멍에 닿는다.

그 틈으로—무언가가 보였다.

Image_fx (42).jpg

검은 어둠.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작은 장면들.
누군가가 비행기 안 창문을 바라보는 모습,
그는 일본의 어떤 도시로 향하고 있었고,
옆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다른 장면에선 이온 치료 장비 앞에 앉아 있는 자아.
환하게 빛나는 전자판 위, 수치는 급격히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또 다른 틈에선, 한 여자가 등을 돌린 채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 구멍은 단순한 틈이 아니었다.
기억의 틈,
감정의 구멍,
그리고···
시간이 교차되는 첫 번째 관측점이었다.

그 순간, 구멍 안 풍경이 일그러진다.
빛이 반사되고, 화면처럼 깜빡인다.

장면은 전환된다.

8년 전, 영국.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마루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22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6부  어둠 속의 숨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