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어둠 속의 숨소리

그 익숙함이 더 무서웠다

by 마루

물기 어린 타일 위, 맨발이 닿는 소리는 없었다.
그저 닿아 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발바닥이 익숙해지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그 익숙함이 더 무서웠다.

샤워기의 한 방울.
뚝.
다음 방울이 떨어지기 전까지의 고요는,
누군가 목소리를 꺼내기엔 너무 완벽하게 짜인 침묵이었다.

후각은 진즉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곰팡이가 벽 틈에서 피워낸 오래된 악취.
금속과 눅눅한 수건, 피지와 비누의 엉킨 냄새.
냄새가 아니라, 계속 눌러대는 손바닥 같았다.
콧속을 밀고 들어와, 안쪽을 문지르고, 기억을 눌러 담았다.

청각은 잊으려 해도 도망칠 수 없었다.
뚝.
뚝.
그 규칙적인 물소리는 메트로놈처럼, 우리 심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심장 박동보다 약간 느린 리듬.
그래서 더 불편했고,
그래서 더 잊히지 않았다.

촉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샤워기에서 흘러내린 미지근한 물.
그러나 그 온도는 어떤 감정도 전달하지 않았다.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그저 ‘온도’ 그 자체.
마치, 감정이 사라진 사람의 손처럼.
그 손이 몸에 닿는 느낌이었다.

시각은 차단당했다.
눈앞은 안개처럼 흐렸다.
너무 뚜렷한 조명도 없었고, 그림자도 없었다.
단지, 서로의 실루엣만이 무심한 벽지처럼 존재했다.
움직임 없는, ‘기다리는’ 형태들.

미각은 알 수 없었지만,
입 안은 떫었다.
말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서였을까.
그 말들이 목젖 뒤에 얹혀 있었다.

고참의 말은, 문장의 형태를 한 주술이었다.
"곧 익숙해질 거야."
그건 예언이 아니라, 주입이었다.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는 선언.

우리는 그 선언 아래 고개를 숙였고,
고개를 드는 대신
자기 안의 감각을 하나씩 꺼내 책상 서랍에 넣듯 닫아두었다.

동기의 어깨가 떨린 건
두려워서라기보다,
‘이해해버린 자신’ 때문이었다.
그들도 결국, 우리와 똑같이 그 문장을 들었을 테니까.

샤워기의 고무줄이
툭— 하고 끊어졌을 때,
그 소리는
비명이 허용되지 않는 곳에서 터진 유일한 신호였다.

폭력은 없었지만,
공포는 공기처럼 곳곳에 녹아 있었다.
폭력은, 때로 눈에 보이지 않아야 더 강하다.
말보다, 눈빛이 더 강한 명령이 될 수 있다.
침묵보다, 소리 하나가 더 큰 경종이 된다.

그날 이후,
우리는 ‘무언가가 다가오기 전의 침묵’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침묵은 예고였다.
숨소리, 물방울, 기척—
그 모든 게 경고음이자 복선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그걸 이해하게 된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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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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