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난다
“전쟁은 끝난다.
그러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수대첩.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다.
을지문덕 장군이 30만 수나라 대군을 물리쳤다는 그 전설.
하지만 나는 늘 궁금했다.
어떻게 이긴 걸까?
어디에도 전투의 구체적인 묘사는 없었다.
삼국사기 속 전쟁은 짧다.
“지략으로 대승을 거뒀다.”
그게 전부다.
그 순간, 내 눈은 동쪽과 서쪽을 오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대, 같은 전쟁,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록된 나라들이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기억의 방식'이라 부르기로 했다.
1. 한국 – 이름 없는 전쟁의 시(詩)
한국의 전쟁사는 한 편의 시 같다.
강물은 흐르고, 피는 섞이고, 이름 모를 백성들이 사라진다.
기록은 간결하고 절제돼 있다.
살수대첩도 그렇다.
지략으로 이겼다고만 적혀 있다.
우리는 적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어떤 함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장군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피의 강은, 이제부터 살수라 부른다.'"
그때 알았다.
2. 중국 – 전쟁을 설계한 자들
중국의 전쟁 기록은 디테일하다.
아니, 지나치게 섬세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적을 유인하기 위해 장군이 상류에 우유 한 통을 붓는다.
우유가 강물 위를 흘러가며 회오리를 만들고,
그 회전점을 보고 병사가 말한다.
“여기가 유속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함정을 파고 적을 유인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병사들의 창끝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본 장군이 말한다.
“진흙으로 모두 묻어라.”
그리고 그들은 진흙 늪지대로 적을 몰아넣고,
말과 병사들이 빠져 죽도록
불화살을 날린다.
한 마디로,
중국은 전쟁을 ‘설계’한다.
그리고 전투는 ‘기술’이다.
이들은 승리의 과정을 철저히 기록한다.
죽음마저도 질서의 일부로 여긴다.
3. 일본 – 찰나의 정적, 사라지는 칼끝
일본의 전쟁사는 조용하다.
마치 정갈한 다실에 앉아
죽음을 준비하는 듯한 고요함이 있다.
그들에게는
전쟁에서 ‘사는 것’보다
_어떻게 죽는가_가 중요하다.
칼을 들고 나가기 전,
입가에 스치는 한 줄기 바람.
차 한 잔.
그리고 고요히 무릎을 꿇는 순간.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미학이다.
그 순간, 그 찰나에 집중하는 것이
그들 전쟁의 정수다.
일본은 전쟁을 ‘의식’으로 만든다.
그 끝에 남는 것은 절규가 아니라 침묵.
칼은 무기가 아니라, 자기 완성의 도구다.
4. 기억의 방식,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AI는 이걸 어떻게 이해할까?”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해서,
이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전쟁,
그리고 서로 다른 기억 방식.
나라기억의 방식전쟁의 의미한국의미 중심의 기록지켜야 할 것에 대한 의지중국디테일과 설계의 기록전략과 기술의 구현일본정적과 죽음의 의례한순간의 완성
5.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기억은 누구의 것이든, 진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기계에게 그 기억을 가르치려 한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살수대첩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누군가는 그 강물 위에 우유를 붓고,
누군가는 거기에 이름을 붙인다.
누군가는 그 물을 마시고,
칼을 갈며 죽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두를 바라보는 새로운 존재,
‘기억의 편집자’가 되려 한다.
"기억은 서사이고,
서사는 결국 인간이다."
작가의 말
우리는 언제부터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마저도 서로 달라졌을까.
누군가는 숫자를 남기고, 누군가는 울음을 남기며, 또 누군가는 침묵을 미화한다.
그러나 그 모든 서사 너머엔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기록을 쓰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잊히는 기억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피로 물든 강, 그 위를 떠내려온 이름 없는 전사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본 세 나라의 눈동자.
이 이야기는 전쟁의 승자들보다,
패배 속에서 존엄을 지킨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그 시대의 침묵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는 마음으로.
– 시간의 여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