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옆, 꿈이 굽고 있었다

독도. 10년 후.

by 마루

《불판 옆, 꿈이 굽고 있었다》



독도. 10년 후.


경위 정환은 조용히 파도를 바라본다.

새벽 4시, 누구보다 먼저 깨어 일지를 정리하고, 바닷바람 속에 오늘의 책임을 어깨에 걸친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단순하고 고된 일을 묵묵히 해낸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르다.


서울에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귀하의 독도 근무기록이

차기 특수전 해양조직 시범 운용 인재 검토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잠시 멈춰, 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린 구름 사이로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하나.


10년 전.

그날도 이렇게 흐린 저녁이었다.

그날, 불판 옆에서 꿈이 구워지고 있었다.


1장. 불판 위의 시선


10년 전, 원주의 한 삼겹살집.


고등학생 정환은 앞치마에 기름 냄새가 밴 채, 알바 중이었다.

손에는 주문서 대신 종이 타올, 귀에는 해양경찰 체력시험 기준을 반복 재생한 이어폰.

누가 보면 별거 아닌 하루.

하지만 그에겐 달랐다.


그날, 한 팀의 손님이 사진을 부탁했다.


“혹시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정환은 묵묵히 다가가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한 손님의 시선이 그의 왼팔에 멈췄다.


흑백 태극기. 그리고 조그맣게 적힌 글씨 — "독도".


“그거… 독도 경비대죠?”


정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 해양경찰도 아니었고, 독도에 가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선 자신이 지켜야 할 바다를 그리고 있었다.


2장. 식식한 궤도


정환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낮에는 삼겹살집, 밤에는 체육관.

복싱 글러브를 낀 손엔 굳은살이 자리 잡았고,

이어폰 속엔 늘 해양경찰 훈련음성과 구조훈련 영상을 틈틈이 틀어놓았다.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을 증명하듯 훈련했고,

기억하듯 꿈을 새겼다.


그날의 손님은 사진 한 장을 받고 돌아갔지만,

정환의 가슴엔 말없이 남은 응시 하나가 찍혀 있었다.

3장. 독도, 경위 박정환


다시 현재, 독도.


경위 박정환은 메일을 다시 확인한다.

“귀하의 근무기록이 우수 인재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는 웃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손끝으로 수첩을 편다.


“그날의 불판.

기름 냄새 속에서, 누군가가 내 꿈을 알아봐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 바다에 있다.”


그는 다시 방수장화를 신고, 거센 바람 속으로 걸어 나간다.

등 뒤로 떠오르는 해가 조용히 그를 비춘다.

4장. 사진 한 장


서울의 그 삼겹살집.

그날 손님 중 누군가는 아직도 그 사진을 가지고 있을까?


흔들리는 웃음, 지글지글한 고기,

그리고 셔터를 눌러주던 고등학생 정환의 팔 위에 붙어 있던 그 작고 낡은 태극기.


그건 단순한 꾸밈이 아니었다.

그건 꿈의 표식이자, 다짐의 흔적이었다.


지금 그는 경위가 되어,

그 팔로 독도를 지키고 있다.

작가의 말


그날 나는 그냥 고기를 먹으러 갔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한 사람의 10년 뒤를 마주쳤다.


그의 이름은 정환이었다.

고등학생이었고, 말이 없었고,

그러나 팔 위에는 나라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붙어 있었다.


나는 그를 기억했고,

그는 그 기억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

그는 독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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