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의 질문

군인 아저씨, 외롭지 않아요?

by 마루

눈보라 속의 질문


그 말이 터진 순간, 온몸에 찬란한 전율이 스쳤다.

"저 군인 아저씨, 외롭지 않아요?"


순간,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얘졌다.

외롭냐고?

그 말은 무심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마음 한가운데를, 정조준해서 찌른 듯했다.

왜 하필 나에게? 왜 지금?

그 속엔 설명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목소리는 어색하게 높았고,

"제가… 돈이 없어요.

아, 죄송합니다!"

생뚱맞은 말이 튀어나왔다.

외로움과 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나의 혼란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날 밤, 창밖에는 뜻밖의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쌓여 가는 밤.

나는 침대에 몸을 던졌고,

불쑥 떠오른 건…

그의 계급장 없는 낡은 군복이었다.

이미 전역한 듯한, 낡고 해진 복장의 군인.

마른 체구에, 깊게 팬 눈가 주름.

아저씨라 부르기엔 젊어 보였지만,

눈빛 속에는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외로우면 사람을 보라."


그가 문득 남긴 말이, 귓가를 울렸다.

그건 내가 던진 '돈이 없어요'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훨씬 더 깊은, 오래된 어둠에서 길어올린 문장이었다.


눈보라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3시.

방안은 유난히 싸늘했고, 고요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내 안의 빈 공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의 연락, SNS의 수많은 알림,

소란스러운 일상의 조각들…

그 모든 것들이 가짜 같았다.

군인 아저씨의 질문은 그 속 빈 공간을 정확히 찔러왔다.


과연 나는 외로운가?


그 질문은 밤새 머릿속을 떠돌았다.

눈이 소복이 쌓이는 소리뿐인 방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고독이라는 감각에 발끝을 담근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창밖 눈 속에 희미한 형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군복을 입은, 마치… 계급장을 잃은 유령처럼.


눈보라는 곧 그를 삼켜 버렸다.

아니, 애초에 그가 진짜였을까?


그 질문은 단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 자신을 향한 고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받아버렸다는 것—

그건, 내 안에 있던 같은 외로움이 움직였다는 뜻일 것이다.



작가의 말


“그 질문은 나를 향한 칼날이자 거울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느 겨울, 진짜 내가 마주한 장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낯선 동네, 낡은 여인숙, 그리고 군복을 입은 남자.

그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불쑥 이렇게 물었습니다.

"외롭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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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문장이 나를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나는 외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왜 사과를 했을까요?

왜 그 순간, 돈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그건 아마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비틀린 방어였을 겁니다.


이 글은 그날 이후 시작된, 제 안의 질문과 복기입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사람마다 다른 언어로 다가오지만,

그날의 나는 그것을 너무 정확히 느꼈습니다.

고요하고, 차갑고, 스스로를 도망치게 만들 만큼 진실한 감정.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건 이 이야기 자체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는 정말 있었을까요?

혹은, 그날 눈보라 속에서 내가 마주친 것은

내 안에 오래 숨겨둔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에게

그 질문이 다시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외롭지 않나요?”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누구든 조금은 침묵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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