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부뚜막, 수박 화채 한 그릇

화채

by 마루

여름날 부뚜막, 그리고 수박 화채 한 그릇


그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낮을 지나 해가 조금 기울면, 동네 수박 장수 아저씨의 리아카가 골목을 천천히 굴러 들어왔다.

수박들이 덩어리째 쌓여 있었는데, 껍질에는 흙이 묻고, 줄기에는 아직 들판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걸 비닐망에 한 통씩 담아 주면, 묵직한 무게가 팔로, 어깨로 전해졌다.


나는 그 수박을 들고 집으로 오면서 머릿속은 이미 그 안의 붉고 차가운 속살을 떠올리고 있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터지고, 씨를 뱉을 때 나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한 입 삼킬 때 식도까지 시원해지는 그 기분.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였다.


집에 도착하면, 수박은 곧장 부뚜막(부엌 한켠의 작업대) 위로 옮겨졌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큼지막한 칼을 들고, 수박 꼭지를 가볍게 두드린 후, ‘팍!’ 하고 반을 갈랐다.

달큰하고 시원한 향이 한꺼번에 퍼졌다.

엄마는 숟가락으로 속을 긁어내고, 칼로 가지런히 사각 큐브를 만들어 쌓아 올렸다.

수박 껍질은 깨끗이 씻어 다시 그릇이 되었고, 그 안에는 큐브 수박과 ‘환타 쿨피스’가 시원하게 부어졌다.

‘치익—’ 하고 터지는 탄산과 수박 향이 부뚜막 위로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얼음을 넣으면 여름 최고의 간식, 수박 화채 완성.


바깥 마당에서는 아빠가 쑥을 쑥! 뽑고 있었다. 달빛이 마당을 은빛으로 덮고, 풀잎 사이로 매미와 풀벌레 소리가 섞였다.

돗자리 위에 둘러앉아, 우리는 달빛 아래서 수박 화채를 떠먹었다.

차가운 국물이 입안을 타고 목을 스치면, 낮 동안 데웠던 더위가 서서히 풀렸다.

엄마는 웃으면서 “여름은 이렇게 먹는 거야”라고 했고,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숟갈 더 떴다.

그날의 그 맛과 공기, 달빛의 색깔까지. 지금도 가끔, 그 모든 게 한 그릇에 담겨 다시 내 앞에 놓이면 좋겠다.

여름의 부스막과 수박 화채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 영원한 여름밤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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