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목탑을 향하여

by 마루

사라진 목탑을 향하여

신라의 9층 목탑의 기록

경주의 여름은 유난히 조용했다.

남산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쩐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그날, 바람이 유난히 청명하던 오후, 능선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풀밭에 앉아 있었다.

풀잎 끝에는 여름 햇살이 들러붙어 금빛으로 빛났고, 그 사이로 매미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나는 숨을 고르며, 문득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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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었다.

눈꺼풀 아래로 이상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마치 오래된 기억의 조각이 깨어나는 것처럼, 피부로 전해지는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보였다.


안개처럼 피어오른 풍경 속에서, 9층 목탑이 솟아 있었다.

그것은 황룡사의 탑이었다. 역사서에만 존재하던, 이미 오래전 사라진 그 목탑.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석양빛에 물든 나무 기둥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선명했고, 탑의 꼭대기에서는 바람을 가르며 청동 풍경이 맑은 소리를 냈다.


탑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라의 왕과 신하들, 무거운 관복을 입은 이들이 탑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들의 옷자락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고, 발걸음은 흙을 밟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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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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