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감정 교차점
〈06:13AM, 얼음의 반란〉
– 원주 무실동 C편의점, 새벽의 감정 교차점
출장 가는 날은 늘 비슷하다.
전날 가방을 정리해두고,
새벽 다섯 시 반쯤 일어나,
머리를 대충 감고 말리다 만 채로 집을 나선다.
그리고
내가 늘 찾는 곳이 있다.
무실동 골목 안,
조금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편의점.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차들도 드문드문 조용히 지나간다.
그 시간에만 열려 있는 듯한,
아주 조용한 공간.
문을 밀자,
띵—똥—
그 익숙한 소리가 새벽 공기를 자른다.
차가운 자동문 틈 사이로,
따뜻한 형광등 불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안에는
노란 머리칼을 묶은,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어딘가 서툰 손짓.
방금 교대를 마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끔한 얼굴.
근데 이상하게—
그 표정 안에는 ‘오늘이 처음이에요’ 같은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나는 김밥 하나를 집어 들고,
커피 머신 앞으로 갔다.
아이스커피.
언제나 마시던 그대로.
가득 담긴 얼음 위로
커피가 천천히 쏟아졌다.
투명한 플라스틱 벽 너머,
검은 액체가 얼음 사이로 흐르며 채워지는 그 장면은
늘 나에게 잠 대신 자극을 줬다.
뚜껑을 눌렀다.
꽉—
그 순간, 컵이 푹 찌그러졌다.
얼음이 한두 개,
툭 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바닥.
수면처럼 고요하던 플라스틱 안에서
얼음들이 조용히 반란을 일으킨 거였다.
"아… 죄송해요."
나는 당황했고,
그 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티슈를 꺼냈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에는 이상한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시선]
나는 그 순간,
뭘 먼저 해야 할지 잠시 멈췄다.
물티슈를 잡은 손에
살짝 떨림이 느껴졌고,
얼음 조각은 생각보다 딱딱했고
물은 생각보다 넓게 퍼졌다.
‘다시 뽑아드려야 하나…?’
‘내 잘못은 아닌데…’
‘그럼 내가 사야 되는 건가…?’
‘첫날인데 이런 일도 있는 거구나…’
고개를 숙인 채
닦았다.
그건 바닥에 쏟아진 물이 아니라,
조금은 내 마음이기도 했다.
얼음처럼 산산이 흩어진 첫 근무의 긴장이었다.
나는 그녀가 커피를 들고
김밥을 전자레인지에 넣는 모습을 바라봤다.
30초.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사람은 나를 등지고 있었고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다시, 내 시선]
나는 반쯤 비어버린 아이스커피를 들고
따뜻해진 김밥을 함께 들었다.
차가움과 온기,
두 손의 감각이 다르게 전달됐다.
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
띵—똥—
그 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상하게도
그건 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내면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 같았다.
[그녀의 마지막 시선]
띵—똥—
나는 무심코 창문 쪽을 바라봤다.
그 남자의 뒷모습이
어스름한 유리창에 살짝 비쳤다.
그 순간 문득,
이 새벽에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처음 알바를 시작했고,
태2반이 걸려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자2반 새벽 교대를 받아들였다.
사장님은 미안해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늘 그런 말부터 배운다.
‘괜찮아요.’
‘저 할 수 있어요.’
‘첫날인데 잘하고 싶어요.’
그 남자의 커피가 반쯤 비어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의 절반을
어디에 두고 있었던 걸까.
그 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람이 만들어낸 소리,
그 커피의 얼음,
그 바닥에 번진 물의 흔적,
그리고 내 손끝에 남은 물티슈의 촉감은
아직 내 하루 안에 남아 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고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새벽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물론, 여운을 남기면서도 이 작품의 결을 살리는
브런치용 작가의 말을 정갈하게 적어볼게:
작가의 말
하루를 시작하는 건 늘 무심한 행위 같지만,
그 안엔 작고 섬세한 감정의 마찰이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커피 한 잔의 무게,
물티슈에 닿은 얼음의 촉감,
그리고 초인종 소리 하나가
두 사람의 조용한 교차점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말 없는 위로가 어떻게 오고 가는지,
아무도 모르게 닿아 있는 마음들이
어떤 방식으로 하루에 흔적을 남기는지를
천천히 따라가 본 기록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첫날에 잠깐 머물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손님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