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해석될 때 살아난다

조선 복장을 한 금속 조형물

by 마루

예술은 해석될 때 살아난다

서울 세종청사 앞, 회색 바닥 위에 덩그러니 선 인물이 있었다.

검은 갓을 쓰고, 조선 복장을 한 금속 조형물. 도시의 빌딩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눈빛은 조형물의 어딘가를 꿰뚫듯 머물렀다.


“왜 여기에?”, “이게 예술이야?”

낯섦은 질문을 만든다. ‘흥겨운 우리 가락’이라는 제목은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저승사자 같다’는 말이 퍼졌고,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은 민원을 넣었다.

결국 2019년, 이 조형물은 철거되었다.

예술은 때로, 맥락을 잃을 때 추방된다.


그 일이 남긴 것은 단순한 조형물의 부재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사건 속에서 예술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창작자의 의도가 전부가 아님을, 예술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해석과 관계 속에서 달라진다는 것을. ‘흥겨운 우리 가락’은 예술가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대중의 해석 안에서 저승사자가 되었다. 그렇게 한 작품은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었다.


예술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가수 이효리가 제주도에서 오래된 집을 고치고, 마당에서 꽃을 심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사람들은 말했다.

“예술 같다.” 그런데 만약 그 인물이 무명의 누구였더라면, 우리는 같은 말을 했을까? “이효리니까 예쁘다.” 이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것은 대상 자체보다, 그 주변의 이야기와 맥락이 예술성을 만든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만 보지 않는다.

그 이미지 뒤에 서 있는 사람의 이름, 설명문, 때로는 SNS 해시태그까지 함께 본다. 미술관에서도 우리는 그림보다 작가의 이름을 먼저 확인한다.

시대는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림을 본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소비’하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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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미술관에 가면 그림보다 작가에게 더 끌린다고 했다.

“나는 작품보다 작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해.”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예술 감상의 새로운 방식이었다.

같은 그림도 누가 그렸느냐에 따라 ‘낙서’가 되기도 하고 ‘초현실주의’가 되기도 한다.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늘 그 그림 뒤의 사람을 읽고 있다.


결국, 우리는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을 감동시킨 그 장면은 정말 그림 때문인가, 아니면 그 그림 뒤의 이름과 이야기 때문인가. 예술은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감상은 이제 눈이 아닌, 마음과 신념의 일이 되었다.


예술은 물건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이며, 대화이고, 관계다.

조형물이 서 있었던 서울의 회색 골목을 지나며,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어도 누군가는 그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술은 또 다른 의미로 살아날 것이다.


작가의 말

예술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해석하는 삶의 언어라 믿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멈춘 그 장면에, 어쩌면 예술은 조용히 숨 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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