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키오스크 앞에서 사라진 한마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가운 목소리가 먼저 날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 뭐 드릴까요? 오늘 고등어가 정말 잘 나왔어요.”
그 한마디에 주문은 끝났고, 고민할 것도,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키오스크 앞에 선다.
반짝이는 화면은 친절해 보이지만, 모든 건 내가 다 해야 한다.
메뉴를 고르고, 소스를 고르고, 옵션을 추가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편리해야 할 주문이 오히려 시험지 같아진다.
QR코드 주문도 비슷하다.
카메라를 켜고, 스캔하고, 다시 몇 번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때로는 느린 인터넷 때문에 화면이 멈추기도 한다.
편리함을 위해 도입된 기술이 어느 순간 또 다른 불편을 낳는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
실제로 HP코리아가 수도권 거주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노년층의 65%가 디지털 기술 미숙으로 일상에서 불편을 겪는다고 답했다.
이는 청년·중년층(13%)의 다섯 배에 달하는 수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노년층의 소외 방지를 위해
맞춤형 디지털 교육,
아날로그 접근권 보장,
기기 개발·보급 지원,
헬프데스크 설치
등을 권고한 바 있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19.5%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기술이 사람을 배제한다면 성장은 건강하지 않다.
편리함의 그림자
사람이 있던 자리에 기계가 놓이면서,
작은 대화와 온기가 함께 사라졌다.
“오늘 뭐가 맛있어요?”라는 질문,
“그것보단 이게 더 나아요”라는 추천은 더 이상 없다.
화면 속 음식 사진을 보며 내가 고르는 건,
정말 내가 원하는 메뉴일까?
아니면 단지 사진이 더 맛있어 보이기 때문일까?
편리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묻는다.
이게 정말 편리한 건지,
아니면 편리함의 얼굴을 한 조금 불편한 세상인지.
작가의 말
우리는 분명 더 빠르고, 더 간단해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편리했던 건,
주문하는 순간 건네오던 한마디 인사와 웃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그 한마디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