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회복, 온전한 나 자신

서랍 깊은 곳에서 발견한 작은 메모리카드

by 마루

불완전한 회복, 온전한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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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깊은 곳에서 발견한 작은 메모리카드. 검게 빛나는 이 조각이 품고 있는 무게를 직감적으로 느꼈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는 분명 잊고 지냈던 얼굴들, 빛바랜 풍경, 찰나의 순간들이 담겨 있을 테죠.

마치 나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열쇠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꺼내 컴퓨터에 꽂아 넣었습니다.

하지만 차갑게 뜬 화면은 "인식 불가"라는 잔인한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그 차갑고 무심한 글자가 꽂히는 순간, 기대감은 한순간에 무너졌죠.

눈에 보이는 데이터는 사라졌지만, 그 조각을 손에 쥔 순간부터 이미 나의 오감은 과거의 파편들을 주워 담고 있었습니다.

손끝에서 느껴지던 까끌한 표면, 귓가에 맴도는 카메라 셔터 소리, 코끝을 스치던 현상소의 쿰쿰한 냄새까지. 기술은 내 기억을 외면했지만, 내 감각은 이미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낯선 복구 프로그램의 창을 마주하고 초보자의 두려움에 손가락을 망설였습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클릭 한 번에 남은 희미한 흔적마저 사라질까 봐.

하지만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복구'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희미하게 번져 나오는 형체가 보였습니다.

깨진 픽셀 사이로 번지는 친구의 웃음, 빛바랜 바닷가의 노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것들은 불완전한 모습이었지만, 마치 아주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되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사진은 영영 흩어져버렸고, 어떤 영상은 끝내 어둠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몇 장의 기억이라도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은 이상하게도 벅찼습니다.

메모리카드에는 단순한 데이터 조각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온도와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복구는 차갑고 기술적인 과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라진 나를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복구 과정은 오히려 더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완벽하게 복원되지 않은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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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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