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서 온 당금주, Wurzelpeter
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뿐인데, 입안 가득 쌉싸름한 풀 냄새가 퍼진다.
달지 않다. 대신 어릴 적 할아버지가 담가두던 약초주처럼,
혀끝에 닿는 그 씁쓸함 뒤로 은근한 단맛이 스며든다.
마치 숲속의 그림자가 천천히 녹아내리는 맛 —
그것이 바로 독일에서 온 허브 리큐어, **Wurzelpeter(부르첼페터)**다.
한국에서 담금주는 ‘시간이 만든 술’이다.
한지 덮인 유리병 안에 인삼, 구기자, 오미자, 감초,
때로는 뱀 한 마리(이건 믿거나말거나)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그 병은 세월이 흐르며 호박빛으로 변하고,
그 안에는 한 세대의 인내와 정성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에도 같은 철학의 술이 있다.
바로 허브 리큐어(Kräuterlikör),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이름 중 하나가 Wurzelpeter다.
1935년, 베를린의 한 약초 상점에서 태어난 이 술은
‘뿌리의 피터(Wurzelpeter)’라는 이름 그대로,
숲에서 캐온 뿌리와 약초를 알코올에 담가 만든다.
감초, 아니스, 생강, 쓴풀, 계피, 정향 등
30여 가지 허브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향은
“독일식 약술” 그 자체다 —
한국으로 치면 식후 입가심주, 혹은 소화주라고 보면 된다.
병을 들면 단번에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다.
노란 라벨 속, 허브 뿌리를 캐고 있는 작은 노인 한 사람.
그가 바로 ‘Wurzelpeter’다.
1930년대, 베를린 외곽에서 실제로 약초를 캐며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전설 속 인물에서
이 브랜드의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림 속 할아버지는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손맛이 공존하던 시대의 상징이다.
그의 술은 상업적인 술이 아니라,
아픈 이의 속을 덥히고, 마음을 다독이는 ‘약술’이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이 술의 향에는
그 시대의 따뜻한 손맛이 스며 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