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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의 유령, 해귀 2부 — 숨의 길

숨을 이기려 하지 마라. 숨은 네 것이 아니다

by 마루

내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재능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살기 위해, 바다와 싸우지 않기 위해 배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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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바르의 바다는 늘 따뜻했다. 햇빛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면, 물은 비취색으로 빛났다. 파도는 크지 않았고, 사람들은 바다를 두려워하기보다 함께 살아갔다. 나의 아비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잠수부였고, 진주를 캐며 생계를 이어갔다.

아비는 늘 내게 말했다.
“숨을 이기려 하지 마라. 숨은 네 것이 아니다.”

어릴 적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속에 들어갈 때마다 본능은 폐를 움켜쥐었고, 가슴은 불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아비는 늘 내 손목을 잡아끌며 바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게 가르쳤다. 올라오지 않는 법이 아니라, 내려가는 법을.

“바다는 네 숨을 빼앗지 않는다. 네가 먼저 내놓는 거다.”

나는 물속에서 눈을 떴다.
소리가 사라지고, 세계가 느려졌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숨을 참는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 아니라,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바다는 가져가지 않았다. 내가 맡겼을 뿐이었다.

진주를 캐던 날, 아비는 오래 돌아오지 않았다.
파도는 잔잔했고, 하늘도 맑았다. 아무도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다는 늘 설명 없이 결정을 내린다. 사람들은 아비가 깊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욕심을 냈다고도 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아비는 바다를 욕심낸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바다와 흥정을 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 바다로 들어갔다.
아비가 남긴 숨의 길을 더듬으며.

시간이 지나, 포르투갈의 배가 항구에 들어왔다. 낯선 말과 낯선 냄새, 번쩍이는 금속과 무거운 십자가. 그들은 바다를 건너왔고, 바다를 정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밑에서 바다는 여전히 같은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배를 탔다.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명나라 군영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름은 필요 없었고, 말은 통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들은 나를 시험했다. 물속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어둠에서 얼마나 조용한지.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라앉았다. 아비가 가르쳐 준 방식으로.

전쟁이 시작되자, 숨은 다시 값이 되었다.
한 번 내려갈 때마다, 한 번의 계약. 그러나 나는 그 값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숨은 원래 사고파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숨은 빌리는 것이고, 돌려주는 것이었다.

조선의 바다는 차가웠다.
말라바르의 따뜻함과는 달리, 이곳의 물은 살을 깎아냈다. 그러나 차가움은 나를 더 깊게 만들었다. 숨은 더 느려졌고, 생각은 더 단순해졌다. 바다 아래에서 나는 늘 아비를 떠올렸다. 그가 남긴 말들, 그가 걸어간 깊이.

“올라오는 길은 생각하지 마라. 내려가는 길만 기억해라.”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언제나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전쟁의 밤마다, 물 위의 불길을 보며 생각했다. 아비는 이런 불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람의 싸움이 아닌, 바다와의 약속 속에서 살았으니까. 나는 어느새 그 약속에서 멀어져 있었다. 바다와 흥정하던 아들의 숨은, 전쟁의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바다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차가운 물은 내 몸을 받아주었고, 어둠은 나를 숨겨주었다. 마치 아비가 아직도 그 아래 어딘가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가끔 나는 생각한다.
내가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도, 계약도 아니었다. 바다가 나를 아직 아비에게 돌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숨은 길이다.
사람이 바다로 가는 길이 아니라, 바다가 사람을 놓아주는 길.

오늘 밤도 나는 숨을 고른다.
언제든 내려갈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는 올라오지 않아도 괜찮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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