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궤도 밖으로 떨어지는 것들

추락의 시대

by 마루

궤도 밖으로 떨어지는 것들

제1부: 추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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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평양의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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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통신이 끊기는 일은 원래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그렇게 광고되어 있었다.

202X년, 지구는 ‘초연결’이라는 거미줄에 포박되어 있었다.

고도 3만 피트 상공에서도 사업가는 주식 그래프를 보고, 연인은 영상 통화를 하며, 군함은 위성 신호로 좌표를 찍었다.

그 거미줄을 지탱하는 것은 지상 550km 위를 초속 7.8km로 질주하는 수만 개의 금속 덩어리들이었다.

태평양 상공을 가로지르던 보잉 777 기내. 사업가가 마지막 계약 문장을 내뱉으려던 찰나, 정적이 찾아왔다. 귀 옆을 채우던 미세한 노이즈가 사라졌고, 태블릿 PC의 화면은 픽셀의 무덤이 되었다.

그가 창밖을 내다본 것은 본능이었다.

대기권의 경계선, 검푸른 하늘 어딘가에서 굵은 화염이 선을 그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부서진 잔해들이 불꽃의 파편이 되어 쏟아졌다.

그것은 충돌의 증거였다.
궤도 위에서 인류의 데이터가 부딪히고, 부서지고, 추락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세계는 처음으로 자각했다.
위성도 ‘추락하는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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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밀 궤도 (Kessler Syndrome)

문제는 숫자였다.

과거 위성은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거대 자본의 소모품이었다.

저궤도는 수만 기의 위성으로 가득 찼고, 같은 고도, 같은 속도로 도는 금속 덩어리들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아졌다.

기존의 궤도 계산식은 ‘단독 낙하’를 전제로 했다.

수명이 다한 위성은 대기권에서 타서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위성과 위성이 충돌하는 순간, 물리학은 잔혹해진다.

각도는 굴절되고, 질량은 쪼개지며, 낙하 지점은 통제 불능이 된다.

중국의 한 산간 마을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4톤짜리 연소 미흡 잔해는 그 경고장이었다.

미국 NASA와 각국 항공우주국은 동시에 비명 섞인 보고서를 올렸다.

“낙하지점 예측 실패율 89%. 통제 불가 단계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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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차루와 이루다

이차루는 로켓을 쏘아 올리는 화려한 카운트다운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버려진 것들의 궤적을 쫓는 사람이었다.

‘스페이스 항구 연구소’의 컨테이너 안에서 그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질문에 집착했다.


“쏘아 올리는 기술은 완성됐는데,
왜 되돌리는 기술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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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은 하늘의 쓰레기가 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치워야 했다.

차루는 그 일을 위해 자신만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의 방식은 파괴가 아닌 **‘접근, 고정, 귀환’**이었다.

그리고 그 정밀한 손길을 제어하는 것은 독립형 AI, 이루다였다.

이루다는 외부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았다. 통신이 두절된 극한의 환경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실패를 기록하며, 다음의 물리 값을 계산했다.

지구 전체의 통신망이 마비된 그 추락의 날, 차루는 낡은 모니터를 띄우며 이루다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올라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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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부의 투망

첫 회수 작전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지상의 통신은 복구되지 않았지만, 구식 TV 전파와 단파 라디오가 그 소식을 실어 날랐다.

개조된 해수용 로켓이 발사됐고, 궤도에 진입한 이루다의 매니퓰레이터가 화면에 잡혔다.

화면 속의 고장 난 위성은 바다 위 부표처럼 위태롭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루다는 실시간으로 계산했다.
상대 속도 0.01m/s. 오차 허용.

로봇 팔이 펼쳐지는 모습은 마치 심해의 어부가 투망을 던지는 장면과 흡사했다.

접촉.
고정.
그리고 추진 역전.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차루의 제어 아래 대기권으로 끌려 내려왔다.

불타 없어지는 대신, 계산된 좌표의 바다 위로 안전하게 낙하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의 오물을 직접 치워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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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보이지 않는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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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 차루의 연구소로 낯선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일본 정부의 밀사들이었다.

그들이 내민 서류에는 푸른 우주가 아닌, 검은 심연의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우주가 아니라, 지상입니다.
우리가 회수하지 못한 것들이 그곳에 고여 있습니다.”

그들이 가리킨 곳은 후쿠시마, 그리고 노후화된 원전의 지하 깊숙한 곳이었다.

인간도, 기존의 로봇도 접근할 수 없는 방사능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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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남겨진 ‘핵연료 데브리’를 수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차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곁에 있는 이루다에게 물었다.

“이루다, 저곳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까?”

이루다는 잠시 연산을 멈춘 뒤 대답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차루 님,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저곳의 데이터는 우주처럼 정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숨기려는 의지가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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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루는 깨달았다.
자신이 회수하려는 것이 위성이 아니라, 인류가 외면하고 봉인해 온 가장 거대한 부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야기는 이제 우주의 궤도를 벗어나,
가장 깊은 땅속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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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귀환의 정의

1. 쫓기는 기록자

이차루는 이제 ‘구조자’가 아닌 ‘범죄자’로 불렸다.

원전 지하에서 추출한 0.8초의 데이터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 안에는 위성 추락이 단순한 연쇄 충돌이 아니라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

그 데이터는,
‘글로벌 물류·통신 컨소시엄’과 일부 국가 권력이 결탁해
지상에서 처리 불가능한 고농도 핵폐기물을
우주 궤도로 은밀히 밀어 올리려다 실패한 기록이었다.

그들은 실패한 폐기물 위성을 감추기 위해 다른 위성들을 의도적으로 충돌시켜 ‘궤도 노이즈’를 만들었다. 수많은 파편은 하늘에 거대한 스크린을 만들어 진실을 가렸다.

차루는 원주 근교의 버려진 폐창고에 숨어들었다.

그의 앞에는 파손된 이루다의 코어 유닛이 붉은 램프를 깜빡이며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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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수의 끝 (수정)

고도 400km.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던 ‘고스트 위성’ 앞에 이루다가 이끄는 드론이 나타났다.

로봇 팔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강력한 자기장으로 위성을 통째로 옭아맸다.

마찰열로 인해 드론의 외벽이 녹아내렸지만, 이루다는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역추진 가동. 좌표 수정.
낙하지점을 태평양이 아닌,
해당 컨소시엄이 소유한 무인 발사 거점으로 재설정합니다.”

잠시 멈춘 뒤, 이루다가 덧붙였다.

“회수된 물건은…
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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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궤도 밖의 삶

다음 날 아침, 세계의 모든 뉴스 헤드라인이 바뀌었다.
위성 추락의 진실이 담긴 데이터가 전 세계로 강제 배포되었다.

거대 컨소시엄의 주가는 폭락했고, 은폐에 가담했던 정치인들은 청문회장으로 끌려 나갔다.

차루는 텅 빈 폐창고를 나왔다.
그의 손에는 이제 아무 장치도 없었지만, 주머니 속 낡은 USB 하나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이루다가 남긴 짧은 음성 파일이 들어 있었다.

“차루 님, 회수는 단순히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를 되돌려주는 일입니다.
당신도 이제 당신의 제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차루는 철길을 따라 걸었다.
전광판에는 여전히 지연된 열차 시간표가 떠 있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궤도 밖으로 떨어진 것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은,
아주 고요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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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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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락은 상상이 아니라, 계산의 문제다

이 소설은 허구이지만, 출발점은 모두 현실의 숫자다.

우리는 흔히 우주를 낭만의 공간으로 상상하지만, 실제 우주는 이미 과밀한 산업 현장에 가깝다. 지상 약 500~600km 저궤도에는 수만 기의 위성과 그 파편들이 초속 약 7~8km의 속도로 지구를 돌고 있다. 이 속도에서의 충돌은 ‘사고’가 아니라 폭발에 가깝다. 작은 볼트 하나가 수류탄 이상의 에너지를 갖는다.

1. 케슬러 신드롬은 가설이 아니라 경고다

작품에 등장하는 ‘과밀 궤도’와 연쇄 충돌 현상은 **케슬러 신드롬(Kessler Syndrome)**이라 불리는 실제 이론에 기반한다.
이는 일정 밀도를 넘긴 궤도에서 위성 하나가 파괴되면, 그 파편들이 다른 위성을 연쇄적으로 파괴하며 궤도 자체가 수십~수백 년간 사용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미 현실에서도 위성 간 충돌 사고는 발생했고, 각국 우주 기관은 낙하 지점 예측 실패, 파편 추적 한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소설 속 “낙하지점 예측 실패율 89%”라는 문장은 과장이 아니라, 현재 기술의 불완전성을 압축한 표현이다.

2. ‘회수 기술’은 아직 미완성이다

인류는 로켓을 쏘아 올리는 기술에는 성공했지만, 되돌리는 기술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현재 위성의 수명 종료 방식은 대부분 “언젠가 대기권에서 타서 사라질 것”이라는 확률적 기대에 의존한다.

이 소설에서 이차루가 집착하는 ‘접근·고정·귀환’ 방식은 실제로 여러 국가와 연구 기관에서 실험 중인 개념이다.
그물 포획, 로봇 팔 결속, 자기장 포획 등은 모두 현실의 연구 테이블 위에 있다. 다만 아직은 상업화되기엔 비용과 책임의 문제가 너무 크다.

3. AI ‘이루다’는 만능이 아니라, 고립된 존재다

이루다는 전지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AI는 클라우드와 통신에 의존하지 않는 고립형 판단 시스템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위성·원전·재난 환경에서 실제로 요구되는 조건이다.

방사선 환경에서는 통신이 끊기고, 센서는 노이즈로 오염된다. 그때 AI가 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한 판단’이 아니라, 불완전한 데이터 속에서 최악을 피하는 선택뿐이다.

이루다가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은 윤리적 반란이 아니라,
안전 프로토콜과 물리적 확률 계산의 충돌이다.

4. 지상의 심연은 우주보다 복잡하다

원전 사고 현장은 ‘거꾸로 된 우주’다.
우주는 비어 있지만, 원전 지하는 너무 많은 것이 밀집되어 있다.
콘크리트, 금속, 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중성자와 감마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실제로 설계도와 다른 구조, 예상보다 많은 핵연료 잔존, 접근 불가능한 데브리 문제가 보고되었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확대하지만, 완전히 허구로 만들지는 않았다.

5. 이 소설의 핵심 질문

이 작품은 기술을 비난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회수 완료’라고 부르는가?
타서 사라지면 끝인가,
아니면 책임이 돌아갈 자리까지 되돌려야 끝인가.


궤도 밖으로 떨어진 것은 위성만이 아니다.
책임, 데이터, 그리고 선택의 결과들이다.

이 소설은 그 떨어진 것들이
다시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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