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카펫

호텔

by 마루

[소설] 마디의 기록 : 1부, 화려한 카펫 위로 흐르던 얼음물

1. 1980년, 서울프라x 호텔의 문이 열리다

서울은 올림픽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채 자본의 팽창으로 뜨거웠다.

주인공이 시청 앞 프라x 호텔 영업관리부(서비스팀)에 입사한 것은 당시 하얏x 호텔에서 베테랑 벨맨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촌 형의 추천 덕분이었다.

호텔학과를 졸업하고 가방을 들어주는 일부터 룸서비스까지, 호텔의 가장 최전방에서 ‘맨투맨’으로 손님을 응대하던 형은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의 탄탄한 경력과 배경 덕에 주인공은 별도의 복잡한 시험 대신 면접을 통해 무난히 프라x 호텔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만 해도 인맥과 현장의 기민함이 공채 점수보다 중요하게 작동하던 시절이었다.


2. 가방 모찌의 환상과 ‘기생 관광’의 서막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외국인 손님들의 가방을 나르는 소위 ‘가방 모찌’를 하며 건네받는 팁은 짜릿했고, 일본어와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외국 손님들과 대화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곧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당시 일본의 역대급 엔고(円高) 현상은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을 한국으로 불러들였고, 그들의 주된 목적은 ‘관광’이 아닌 ‘기생(妓生) 관광’이었다.

낮에는 롯데호텔 주변이나 북창동, 남대문 시장을 돌며 평범한 관광객처럼 굴던 그들은 해만 지면 본색을 드러냈다. 호텔 정문 앞에는 저녁마다 비각, 미원, 아리랑 같은 문구가 적힌 봉고차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북악산 자락의 요정 집에서 보낸 차들이었다.

그들은 그 차를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새벽이면 술과 욕망에 찌든 채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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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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