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와 코치, 그리고 관계의 끝에서

눈치

by 마루

눈치와 코치, 그리고 관계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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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대화 이전에 이미 흘러가고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다. 말보다 빠른 미묘한 변화들. 눈동자의 흔들림, 입꼬리의 미세한 긴장, 고개가 아주 조금 기울어지는 각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서일까.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 늘 더 크게 느껴진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말하는 눈치라는 단어는, 혹시 눈의 끝이 아닐까.

눈이 모든 것을 본다면,
눈의 끝은 모든 것의 가장자리만 본다.
정확히 말하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
하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부분.

눈치는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 말끝을 흐렸을 때,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괜찮지 않은 표정을 지을 때,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묻지 않아도 컵을 바라보는 시선을 볼 때.

그건 능력이 아니라,
의지에 가깝다.

“나는 지금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라는 무언의 선언.

눈의 중앙이 아니라,
눈의 끝에서 이루어지는 관찰.

그래서 나는 눈치를
감각이라고 부르기보다 태도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리는 말한다.

“눈치 코치도 없다.”

코치.
코의 끝.

코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자리다.
살아 있다는 가장 원초적인 증거가 드나드는 통로.

그 끝조차 쓰지 않는다는 말은,
상대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처럼 들린다.

눈치도 없고, 코치도 없다면
그건 단순히 둔한 것이 아니라
관계에 참여하지 않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눈치 보면서 사는 게 제일 싫다.”

맞는 말이다.
눈치를 보는 삶은 피곤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눈치 없는 사람을 더 견디지 못한다.

눈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늘 기대한다.

“알아줘.”
“느껴줘.”
“말 안 해도 좀.”

이 모순 속에서 관계는 유지된다.

눈치는 보통 약자가 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가장 치열하게 작동하는 곳은
가장 가까운 관계다.

연인.
부부.
가족.
오래된 친구.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무례해도 괜찮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서의 무심함은
칼처럼 날카롭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나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이 시험한다.

말하지 않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실망한 뒤에야 입을 연다.

“넌 왜 몰라?”

그 말의 진짜 뜻은 이것이다.

“나는 아직도 너에게 기대하고 있다.”

사진을 찍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을 만난다.

모델이 카메라를 보지 않는 순간.
시선이 아주 살짝 옆으로 흐르는 찰나.
그때 얼굴은 가장 솔직해진다.

연출된 표정이 아니라,
아직 들키지 않은 감정.

나는 그때 셔터를 누른다.

사람의 중심이 아니라,
사람의 끝을 기록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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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도
눈치를 배우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말하지 않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연습.

눈치는
눈의 끝에서 시작되지만,
마음의 끝에서 완성된다.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나는 아직 당신을 볼 생각이 있습니다.”
라는 조용한 선택.

그래서 나는 이제
눈치 없는 사람이 무례해서 싫다기보다,
아무도 보지 않겠다는 태도가 슬프다.

관계의 끝은
싸움에서 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서로를 더 이상 관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온다.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오늘도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눈의 끝을 본다.
코의 끝을 본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미세한 신호들을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적는다.

“아직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다.”

그것이면,
아직은 충분하다.

하이오렌지 스냅은
당신의 눈치가 머무는
그 찰나의 끝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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