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결과 사이의 냉혹한 간극

뷰파인더

by 마루


[기록] 신념과 결과 사이의 냉혹한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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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작은 작업실,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을 보듯 SNS의 한 장면에 시선을 멈춘다.

아프리카 가나의 한 남자가 만든 여덟 척의 배. 2025년 크리스마스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 믿으며, 그는 인류를 구원할 방주를 지었다고 했다.

사진가는 안다. 사진 속 배는 조악한 눈속임이 아니었다.

나무를 깎고 못을 박은 노동의 흔적, 그건 정직한 육체의 기록이었다.

속이려 했다면 셔터 한 번의 착시로 끝냈을 일을, 그는 생의 시간을 갈아 넣으며 실체로 증명해냈다.

그 안에는 분명 **'신념'**이라 불릴 만한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2026년이 되었고, 예언했던 홍수는 오지 않았다.

성실한 오판, 그리고 남겨진 것들

세상은 그를 비웃는다. 실패한 예언가, 혹은 영리한 사기꾼이라고. 실제로 예언은 빗나갔지만, 그에게는 팔로워가 남았고 주목이 남았으며, 어쩌면 자본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과거 휴거를 외치던 이들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건물과 계좌만 남았던 것처럼, 이 구조는 지독하게 반복된다.

여기서 사진가의 눈은 더 깊은 곳을 파고든다.

결과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흘린 땀방울까지 가짜가 되는 것일까?

인생은 늘 이런 신념들로 일렁인다.

이번 주엔 로또가 될 것 같다는 믿음, 이 작업은 분명히 대중에게 통할 거라는 확신. 하지만 현실은 대개 무심하다. 세상은 단 하나의 신념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과 재능, 그리고 기적처럼 맞물려야 하는 타이밍까지. 지구가 지금의 궤도를 지키는 것이 수만 가지 우연의 합치인 것처럼, **'결과'**란 구슬이 실에 꿰어지듯 모든 조건이 완벽히 맞아떨어졌을 때만 허락되는 선물이다.

이야기가 된 실패

우리는 너무 쉽게 '성공'과 '실패'라는 두 문장으로 타인의 생을 마감해버린다.

작품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가 견뎠을 망설임과 불안, 반복되는 실패의 질감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결과가 좋으면 신념은 추앙받고, 결과가 나쁘면 그 모든 성실함은 한순간에 '무효'가 된다.

가나의 그 남자는 진심으로 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신념은 현실과 어긋났고, 오판의 대가는 냉혹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과정은 기록으로 남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실패한 방주'라는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로 변형되어 살아남는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이야기는 성공이 되는 아이러니. 사진가는 그 지점에서 셔터를 멈춘다.

그의 신념을 비웃는 대신, 신념과 결과 사이의 그 아득하고 냉혹한 간극을 조용히 바라보기로 한다.

우리의 인생 또한 늘 그 중간 어딘가에서,

오지 않을 홍수를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각자의 배를 깎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에.


"오늘 당신이 깎고 있는 나무는, 당신에게 어떤 신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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