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앞에 서면
바다 앞에 서면
늘 비슷한 장면을 보게 된다.
파도는 오고, 파도는 가고,
사람은 잠깐 머물다 다시 돌아간다.
그날도 그랬다.
특별할 것 없는 겨울 바다,
조금 차가운 바람,
그리고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들.
깃발을 든 사람,
현수막을 잡은 사람,
두 손을 모은 사람,
카메라를 멘 사람.
누가 앞이고
누가 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았다.
이 장면이 좋았던 이유는
구호가 적어서였다.
대신 걸음이 있었다.
대신 눈빛이 있었다.
대신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방식이 있었다.
요즘 우리는
무엇이든 빠르게 결론을 요구받는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성공인지, 실패인지.
옳은지, 틀린지.
하지만 이 사람들의 걸음은
결론보다 과정에 가까워 보였다.
“지금 여기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말이 되는 상태.
현수막에 적힌 문장은 분명했지만,
내가 더 오래 보게 된 것은
문장 뒤의 얼굴들이었다.
주름진 얼굴,
조금 굽은 어깨,
천천히 움직이는 발걸음.
젊지 않아서가 아니라,
급하지 않아서 느린 걸음.
그 느림 속에는
오래 생각해 본 사람 특유의 밀도가 있었다.
나는 늘 촬영하는 쪽에 서 있다.
프레임을 만들고,
거리와 각도를 재고,
어디까지 담을지 판단하는 쪽.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장면을 찍을 때마다
내가 점점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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