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나
30cm의 침입자 : 줄과 무선의 모순
이건 귀신 이야기가 아니다. 지독하게 온기가 서린, 사람 이야기다.
렌즈로 세상을 보는 나는 언제나 관찰자였다. 대상과 나 사이에는 늘 적당한 거리와 단단한 유리가 존재했다. 그날, 원주에서 삼천포로 향하던 길에 들른 그 진주의 사우나에서도 나는 나만의 프레임을 견고히 구축했다고 믿었다.
복선의 배치: 완벽한 좌표
새벽 2시, 지하 상가 사우나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나는 자리를 잡았다.
잠들기 전, 나는 나만의 '결계'를 확인했다.
양쪽 귀에는 **무선 이어폰(버즈)**을 꽂았다.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내 호흡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어폰을 꺼낸 충전 케이스를 내 머리맡, 왼쪽 이불 바로 옆 30cm 지점에 놓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 내 사적인 영토의 정중앙.
나는 그 좌표를 분명히 인지하며 눈을 감았다. 그것이 내 평온을 충전해줄 유일한 도구였으니까.
가위: 무게의 실체
잠이 들자마자 몸이 눌렸다.
누군가 내 가슴 위에 묵직한 손을 얹은 것 같았다. 차갑지 않았다. 기분 나쁠 정도의 미온(微溫). 귀를 막은 이어폰 덕분에 바깥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내 몸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더 예민하게 다가왔다.
누군가 내 머리맡에서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가위눌림이 만드는 환청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 가슴을 누르던 그 무게감은 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미세하게 들썩였다. 그것은 실존하는 '체온'의 무게였다.
응시: 줄 이어폰을 낀 남자
새벽빛이 들어올 때 눈을 떴다.
그리고 그를 봤다.
사우나복을 입고 머리가 쭈뼛 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남자.
가장 기이했던 건 그의 귀에 걸린 낡은 줄 이어폰이었다.
하얗고 긴 선이 그의 목을 타고 사우나복 안으로 지저분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미동도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노골적이고 집요한 시선. 그 시선은 렌즈보다 더 차갑게 내 얼굴을 찍어내고 있었다.
탕 안에서도, 거울 속에서도 그 줄 이어폰을 덜렁거리며 그는 나를 쫓았다.
결말: 사라진 무선의 궤적
사우나를 빠져나와 차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주머니 속에는 귀에서 뺀 유닛만 굴러다닐 뿐, 충전 케이스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좌표가 되살아났다. 이불 옆 30cm. 내가 가위에 눌려 숨을 헐떡이던 그 새벽, 그 남자는 내 머리맡까지 기어 왔던 것이다. 줄 이어폰을 목에 감은 채, 그는 무선으로 자유로운 나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듯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는 줄 이어폰을 쓰는 사람이다. 그에게 내 무선 충전 케이스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하지만 그는 가져갔다.
그가 내 가슴 위에 얹었던 묵직한 무게는, 내 소지품을 가져가기 위해 내 몸 위로 깊숙이 숙였던 그의 상체 무게였다. 그는 이어폰에 가로막혀 듣지 못하는 나의 무방비한 숨소리를 즐기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약탈했다.
그는 케이스를 훔친 게 아니다. 나의 안전과 자부심을 훔친 것이다.
나는 이제 무선 이어폰을 낄 때마다,
내 귓가에 닿는 이 고요함이 누군가에게는 침범하기 좋은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이건 귀신 이야기가 아니다. 줄 이어폰을 낀 괴물에게 나의 좌표를 탈취당한, 어느 사진사의 비릿한 기록이다.
작가의 말
이건실화다.
청각의 차단과 침범: 주인공은 '무선 이어폰'으로 소음을 차단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소리 없음이 그에게는 '대담한 범행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케이스의 상징성: 유닛(이어폰)은 남았지만 케이스(집/충전소)를 잃었다는 것은, 나의 이제 어디에서도 마음 편히 '충전(휴식)'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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