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남부시장 뻥튀기 관찰기

5,000원에 산 팽창의 미학

by 마루

원주 남부시장의 뻥튀기 가게에서 시작된 짧은 기록

5,000원에 산 팽창의 미학

원주 남부시장 뻥튀기 관찰기

​원주 남부시장, 큰길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작은 뻥튀기 가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길목이지만, 걸음을 멈추고 다가가면 투명 비닐봉지 속에 담긴 다채로운 계절이 보인다. 서리태, 보리, 쌀, 그리고 노란 옥수수. 봉지 하나를 집어 들며 주인아저씨께 물었다.

​"아저씨, 여기서 제일 부드러운 게 뭐예요?"

​아저씨는 말없이 무심한 듯 툭, 봉지 하나를 골라 내민다. 그 짧고 단호한 동작에서 수십 년 세월을 이 골목에서 버텨온 숙련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계산을 마치고 슬쩍 덧붙였다. "저... 기계 좀 구경해도 될까요?" 아저씨는 잠시 눈을 맞추더니, 이내 툭 고개를 끄덕인다. 무심하지만 따뜻한 암묵적 허락이다.

​1. 압력이 만든 평행이론: 뻥튀기와 팝콘

​사진 한 장의 양해를 구하고 들여다본 기계는 머릿속에 남아있던 투박한 원통은 아니었다. 이제는 기계식으로 개조된, 단단하고 현대적인 구조다. 하지만 그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혹은 먼 나라의 간식이나 놀랍도록 닮아있다.


​곡물 내부의 수분을 고온으로 가열해 수증기압을 높인 뒤, 외부 압력을 순식간에 떨어뜨려 전분 구조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는 것. 미국 대공황 시절 극장의 저렴한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은 **'팝콘'**이 개별 알갱이의 자율적인 폭발에 의존한다면, 한국의 **'뻥튀기'**는 강철 원통이라는 외부의 압력을 빌려 통제된 폭발을 만들어낸다.

​미국의 팝콘이 대량생산된 시즈닝과 패키지로 규격화될 때, 원주 시장 골목은 여전히 주인장의 감각과 '고개 끄덕임'이라는 휴먼 터치(Human Touch)를 유지하며 **'기다림의 미학'**을 완성하고 있었다.


​2. 남양 분유통이 소환한 억눌린 기억

​시선을 옮기다 문득 한 구석에서 멈췄다. 낡은 남양 분유통. 그 녹슨 철통을 보는 순간, 억눌려 있던 기억이 굉음처럼 터져 나왔다.

​과거 우리에게 뻥튀기는 사 먹는 상품이기보다 '가공 서비스'에 가까웠다. 집에서 깨끗이 씻은 분유통에 옥수수 한 되를 담고, 단맛을 한 톨이라도 더 잡아두려 휴지를 한 겹 덮어 가져가던 시절. 그 작은 통 하나는 순식간에 커다란 포대가 되어 돌아왔고, 아랫목에 놓인 하얀 무명 자루는 온 가족의 허기를 달래주던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것이 간식이었는지, 아니면 배고픈 시절의 식사였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분

유통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결핍을 풍요로 부풀리던' 마법의 규격이었으니까.


​3. 부풀어 오른 것은 강냉이만이 아니었다

​오늘 남부시장에서 산 뻥튀기 한 봉지, 5,000원. 가격은 숫자로 분명해졌지만, 그 속에 담긴 기억의 부피는 여전히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부풀어 있다.

​기계는 개조되고 세월은 흘렀어도 사라지지 않은 것은 압력과 기다림이라는 방식뿐이다. 뻥튀기는 여전히 터지고, 사람은 그 소란스러운 압력 앞에서 조용히 서서 기다린다. 압력이 쌓이는 시간만큼, 우리의 기억도 켜켜이 쌓여간다.

​오늘 내가 산 것은 입안에서 바스러지는 고소한 곡물이 아니라, 지난 세월 우리가 견뎌온 팽창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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