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카르 베엔디(Hünkârbeğendi)
훈카르 베엔디(Hünkârbeğendi)
원주 중앙동.
낡은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골목의 공기는 늘 조금 늦다.
유행도, 속도도 한 박자씩 뒤에서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이 동네를 좋아한다.
관측하기에 적당한 속도다.
그날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는 더 느렸다.
훈카르 베엔디.
술탄이 좋아했다는 요리.
이름은 거창하지만, 첫인상은 조용했다.
높이도 없고, 장식도 과하지 않다.
아래에는 부드럽게 깔린 가지 퓌레,
그 위에 조심스럽게 얹힌 고기 스튜.
사진으로 치면, 과도한 대비 없이 톤을 낮춘 장면이다.
첫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맛있다’보다 먼저 다른 감각을 느꼈다.
저항이 없다.
이 음식은 씹으라고 존재하지 않는다.
혀로 밀면 끝난다.
치아는 필요 없고, 힘도 필요 없다.
사진가로서 이 감각은 낯설지 않았다.
잘 찍힌 사진도 그렇다.
설명하지 않아도 들어오고, 애쓰지 않아도 남는다.
여기서 나는 알게 된다.
이 요리는 ‘강한 맛’이 아니라
**‘배치된 부드러움’**이라는 것을.
아래와 위.
역할은 분명하다.
가지는 불에 태워 껍질을 벗기고,
다져서, 버터와 함께 녹였다.
연기와 지방이 섞인 질감.
이미 여기서 음식의 절반은 끝난 셈이다.
고기는 그 위에 얹힌다.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배경에 기대는 존재다.
가지가 없으면 고기도 성립하지 않는다.
사진에서도 자주 보는 구조다.
피사체보다 중요한 건
그 피사체가 어디에 놓였는가다.
원주 중앙동에서
오스만 제국의 궁중 요리를 먹는다는 사실은
의외로 낯설지 않았다.
이 동네는 늘 그런 식이다.
과거와 현재가 설명 없이 공존한다.
낡은 간판 옆에 새로운 메뉴가 붙어 있고,
시간대가 다른 장면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술탄이 사랑했다는 요리가
2026년의 원주에서 조용히 식혀지고 있다.
그 간극이 좋았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미각을 훈련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사진을 오래 찍다 보니
씹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에 민감해졌다.
질감이 먼저 오는 음식
설명보다 구조가 보이는 맛
강하지 않아 오래 남는 여운
이건 혀의 감각이 아니라
관측의 감각에 가깝다.
현금처럼 사라지는 맛도 있고,
사진처럼 남는 맛도 있다.
훈카르 베엔디는 후자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온도와 질감이 있었다.
맛은 데이터가 되지 않지만,
장면은 기록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을 계속 모으는 사람이다.
중앙동의 느린 공기 속에서,
술탄이 사랑했던 부드러움 하나를
조용히 프레임에 넣어두고 나온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