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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09. 2024

어느 해 어떤 선생

-학교는 안전한 곳인가

  학교라는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양아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에서 너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양아의 학교 생활을 지켜보는 게 참 아프다. 여자들만 다니는 여자학교, 남자들만 다니는 남자학교가 여전히 존재한다. 세상이 변했는데, 학교만 오래전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바뀌지 않는 틀 속에 너와는 세대가 다른 존재들이 그저 담긴 공간에 불과한 느낌이다. 때론 지나치게 잔인해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 때문에 학교란 곳이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교사들은 과연 그런 잔인한 아이들을 잘 다룰 수 있는가 반문해 본다. 문제의 아이들이 있고 그런 아이들을 다루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는 학교로 양아를 보내야 한다.      


  양아의 학창 시절 중 훌륭한 선생을 만난 적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 담임선생이다.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섬세함을 선생으로서의 역할에 잘 녹여낸 사람으로 기억한다. 학교 내에서 진행하는 모든 활동에서 학생들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적절히 조치해 주었다. 부모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파악했다. 말투 하나 행동 거지 하나하나가 부족함이 없었던 여 선생은 너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모에게도 안전감을 주었다.


  담임 선생님 참 좋지 않나요?


  공개 수업이 있던 날 복도에서 만난 학부모가 네게 말을 건넸다. 시간에 맞춰 교실에 도착했을 땐 교실 뒤쪽은 먼저 온 학부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실로 들어가지 못한 학부모들이 복도에 서서 공개 수업을 보고 있었다.


  네, 선생님을 잘 만난 것 같아요.


  그렇죠. 저런 선생님이 없어요. 아이도 좋아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최고죠. 수업도 잘하시네요.


  참 친절하세요. 6년 동안 만난 선생님 중에 최고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공개 수업을 다녀온 이후로 담임선생에 대한 신뢰가 더욱 높아졌다. 굳이 주변의 평가가 없더라도 좋은 선생이란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양아의 말을 들어 봐도, 선생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 오늘 우리 선생님이랑 상담했어.


  그래 뭐라고 하시던?


  선생님이 아주 조그만 거라도 좋으니,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한 점이 있다면 말해주면 좋겠다고 하셨어.


  말씀드린 건 있고?


  응, 교외 체험 학습 갈 때 같이 앉을 친구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어.


  그랬구나! 다른 친구들은 다 짝지가 정해졌니?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는 아직 짝이 없어.


  같이 앉고 싶은 친구 있으면 먼저 말하면 되잖아.


  모르겠어.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어?


  아직 짝지가 정해지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지 챙겨본다고 하셨어. 그날까지 짝지가 없으면 선생님이랑 같이 앉아 가면 된다고 하시면서.


  여자 아이들에게 짝지는 중요했다. 점심시간 교실에서 식당으로 이동할 때도 짝지가 필요한데, 하루 종일 차로 이동하며 진행하는 일정에서 짝지가 없다는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6학년 담임의 강점은 먼저 물어 봐주고 함께 고민해 주는 것에 있었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기 전에, 문제가 일어나 아이들이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 전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 그런 섬세한 챙김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안전감을 주는지 그것도 받아 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양아가 6학년의 과정을 무사히 마쳤을 때, 부모로서 담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너는 그해 베스트셀러 한 권을 샀고, 양아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엄마, 우리 쌤 책 받으시고 엄청 좋아하시더라.


  편지도 드렸지? 그게 제일 중요해!


  그럼, 선생님께서 책상 서랍을 막 뒤지더니 그 안에 있는 간식 모조리 꺼내서 주셨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교실에서 아이들이랑 나눠 먹었지.


  잘했네!


  반 친구들 모두 나눠주고도 사탕이랑 과자가 남아서 가져왔어.


  아이가 펼쳐 놓은 사탕과 과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양아의 말을 듣고 있으니 살가운 교실의 풍경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해 담임선생은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아이의 마음에 응답해 주었다. 5학년 때의 교실과 비교해 보면 도무지 같은 학교라고 믿기 어려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5학년이었던 그해는 양아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친구들을 가로 채는 은솔 때문에 한창 힘들어 할 때였다. 아이의 가방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작품이 망가지는 동안 선생은 피해자의 보호자인 너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엔가 양아와 은솔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일어났다. 아주 사소해서 조용히 타이르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하나 때문에 촉발된 일이었다. 그날 너는 양아로부터 서류 한 장을 받았다. 마치 경찰서에서 작성한 조서 같은 서류가 양아의 가방에서 나왔다. 사건의 일시와 이유, 선생의 의견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누가 버렸는지 실랑이를 벌인 일을 가지고 문서화를 한 선생의 저의가 궁금해졌다. 5학년 남자 담임 선생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양아는 잘못한 것도 없이 죄인이 된 것처럼 기가 죽어 있었다. 앞으로 무슨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담임 선생과 편히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해 담임 선생은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한 사람처럼 철저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학교에 마련된 안전 시스템은 작동하지 는 부분이 많다. 그러니 어느 해 어떤 선생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해 학교가 불안전한 곳이 되기도 하고 안전한 곳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학교로 양아를 보내는 아침이 무겁다.


  학원 마치고 들어온 양아가 가방 안에서 상장을 꺼낸다. 창의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장과 교내에서 주는 공로상까지 두 장의 상장을 가져왔다.


  학교에서 공로상을 주더라.


  양아는 너와 남편에게 선물이라도 주는 것처럼 상장을 내민다. 이 시간이 되면 녹초가 된 모습과는 달리 여전히 기운이 펄펄한 것도 같다.


  오오! 우리 양아, 학교에 공로한 바가 크구나!


  상장을 살펴보던 남편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다.


  히히, 학교 입구에 플래카드도 걸어줬어.


  학교에서도 대게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한 번 보러 가야겠는 걸.


  남편이 너스레를 떤다.


  근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별로 관심도 없더라. 따로 칭찬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갔는데 미술 선생님이 방방 뛰셨어. 엄청 칭찬하시면서 미술부로 당장 들어오라고…….


  지금 하고 있는 독서부는 어쩌고?


  네가 물었다.


  독서부도 하는 게 없어서 편하긴 한데, 미술 선생님이 나 엄청 욕심내던데.


  선생님이야 욕심낼 수 있지. 그래도 중간에 바꾸는 건 좀 생각해 봐야 해.


  봐서. 근데 엄마 나 미술 학원 다녀볼까?


  미술 학원은 만화 가르치는 곳 하고는 다른데.


  그렇지. 우리 동네 그런 학원은 없나?


  없지. 애니나 웹툰 가르치는 곳은 멀리까지 가야 해. 그리고 미술 학원까지 다닐 시간이 어디 있니.


  상장 한 번 탔다고 해서 따로 시간을 내서 미술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미술 활동이나 미술과 관련된 꿈을 꾼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하기까지는 아직 양아의 재능이나 의지가 더 확인되어야 할 것 같다. 워낙 모르기도 하고 관심이 없는 분야다 보니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할지 막막하다. 학교에서도 예체능 수업은 여전히 곁가지 취급을 받고 있다. 도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어야 하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특히 양아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는 가르치는 곳이 드물다. 미술 학원조차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까지 했다. 만화를 가르치는 곳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코 앞이다. 시험 기간이 되면 너와 양아가 모두 바빠진다. 시험 문제 출제는 퇴근 후 집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말까지 할애해야 한다. 게다가 양아가 시험 준비하는 걸 점검해야 하니, 중간·기말 기간이 되면 너의 신경이 평소 두 배 정도는 곤두서게 된다. 양아가 수상의 기쁨에 취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염려스럽다. 다른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공부하고 있을 텐데, 얼른 평상심을 찾고 공부에 돌입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양아는 이제 공공연하게 만화를 그린다. 그간 숨겨두었던 만화 연습장을 가져와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보자고 해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게 있다. 순진한 줄 알았는데, 만화 내용을 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 만화로 수상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에 성공했다. 문제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학교에서 점심 식사를 끝내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 있을 때다.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양아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엄마…….     


  음, 양아 웬일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나, 조퇴하면 안 돼?     


  왜! 무슨 일인데.    

 

  나 너무 힘들어……, 흑흑     


  수화기 너머에서 양아가 울고 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진다. 다그친다고 될 일이 아니라서 잠시 기다려 본다.     

 

  애들이 나 막 째려보고, 자꾸 시비 걸고…….     


  뭣 때문에 그러는데?     


  쉬는 시간에 그림 그리고 있었거든. 애들이 막 몰려와서 구경하고, 잘 그린다고 애들이 그런 거야. 근데 갑자기 예빈이가 오더니 민경이가 더 잘 그린다고 그러는 거야. 예빈이가 은솔이 무리거든. 은솔이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그러는데, 평소에도 이유 없이 나 째려보고 그런 애야.      


  그래서?     


  민경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나가버리는 거야.      


  왜?     


  모르지, 나도. 민경이랑은 사이도 나쁘지 않았는데, 괜히 어색해져서……. 다음 시간이 체육 시간이라서 체육관으로 가려고 나갔는데, 은솔이랑 예빈이랑 복도에서 애들하고 쑥덕거리고 있는 거야. 막 나 흘겨보면서.     

  아이, 진짜. 짜증 나는 놈들이네. 양아, 너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또 시작이구나. 친구 이간질시키고 뒷담 하는 게 그 애들 일상이야.

    

  체육 시간에 또 피구 했잖아. 엄마 피구할 때 애들 맞히면 욕하는 거 알지. 평소보다 더 심하게 그러고 대놓고 욕하면 혼나니까. 티 안 나게 막 짜증 내고, 딴 데 보면서 말하고 그러는 거야. 정말 못 해 먹겠다.     


  도대체 너네 선생은 뭐 하고 있니? 애들 경기 매너나 좀 가르치지 않고.     


  체육 쌤은 피구 시켜놓고 신경도 안 써. 그리고 체육 선생님도 애들 눈치 보면서 인기 있는 애들 편들고 차별한다고. 나 학교에 있기 싫어. 머리도 아프고, 조퇴하면 안 돼?  

   

  어디 병난 것도 아니고, 이런 일로 조퇴하면 너만 억울하잖아. 머리 아프면 보건실 가서 진통제 타서 먹고 좀 견뎌봐.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고, 엄마가 중간에 나갈 수도 없잖아.  

   

  이런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찢어진다. 제 딴에는 너무 힘들어서 전화했을 텐데……. 속 시원하게 조퇴하라고 허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나 속 울렁거림을 호소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처음엔 친구들 사이에서 오는 문제가 신체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것과 비슷한 일만 일어나도 양아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양아가 민감해지는 만큼 너도 민감해졌다. 너는 마치 양아와 보이지 않는 촉수로 연결된 것처럼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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